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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0.12 20:24

문장강화
이태준 지음, 임형택 해제/창비(창작과비평사)


글쓰기는 생활도구이다!

- 이태준, 『문장강화』


좋은 글쓰기란 무엇인가?


 글을 잘 쓴다는 것, 그것은 좋은 글을 쓴다는 것과 같은 의미이다. 그렇다면 좋은 글이란 무엇일까? ‘좋은 글’이라 하면, 무언가 대단한 것이라 생각하기 마련이다. 엄청난 양의 고전이나, 사람들에게 추앙받는 몇몇 글들을 통해 그런 이미지가 생성되었다. 다가가기가 어렵고, 자신과는 매우 동 떨어진 그런 글이 좋은 글이라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상허(尙虛) 이태준 선생이 쓴 『문장강화』에서 좋은 글이란, 대단한 것이 아니다. 글이라 하면 시나 소설 등의 문학 혹은 유명인사의 수필만을 떠올리기 마련이지만, 사실 글에는 일기도 있고 서간문(편지)도 있다. 그런 글에 ‘대단함’ 혹은 ‘다가가기 어려움’이 있을 리 만무하다. 그래서 『문장강화』에 일기나 서간문의 형식에서 좋은 글의 예시를 보면, 우리 주변에 흔히 볼 수 있는 필부필부(匹夫匹婦)의 이들이 쓴 글이다. 다시 말해, 좋은 글은 누구나 쓸 수 있다는 의미이다.


 좋은 글을 누구나 쓸 수 있다면, 좋은 글이라 부를 수 있는 기준은 무엇인가? 상허(尙虛) 이태준 선생에게 있어 좋은 글의 기준은 정해진 게 아니라, 글을 쓰는 ‘목적’에 따라 수 없이 다양한 것이다. 글을 쓸 데에는 그 목적이 각각 다를진대(서간문과 기사문의 목적이 같을리 없다.), 그 목적에 알맞은 ‘도구’의 역할을 하는 글을 좋은 글이라 보았다. 그렇기에 도구의 쓰임에 ‘위계’가 없듯이, 글쓰기에도 ‘위계’라기보다는 어떻게 하면 ‘글쓰기’라는 도구를 잘 쓰느냐에 따라 좋은 글이 갈린다고 보았다. 사실, 도구를 잘 쓰는 것은 기술자이지 귀족이 아니잖은가.


글쓰기는 생활도구이며,

글을 잘 쓰는 것은 기술이다.


 결국 『문장강화』에서 글쓰기란 철저하게 생활도구로 인식된다. 그리고 좋은 글을 쓴다는 것은 그러한 생활 도구를 잘 다루고 쓸 수 있음을 의미한다. 도구를 잘 다루고 쓴다는 것, 그것은 다시 말해 ‘기술’이다. 좋은 글을 쓰는 것은 ‘기술’의 습득이라는 게 상허(尙虛) 이태준 선생의 주요한 생각이다. 그의 문장작법(文章作法)에 대한 생각이 가장 잘 드러내 있는 구절이 있다. 바로 아래의 글이다.


 〈그러니까 글은 아무리 소품이든, 대작이든, 마치 개미면 개미, 호랑이면 호랑이처럼, 머리가 있고 몸이 있고 꼬리가 있는, 일종의 생명체이기를 요구하는 것이다. 한 구절, 한 부분이 아니라 전체적인, 생명체적인 글에서는, 전체적이요 생명체적인 것이 되기 위해 말에서보다 더 설계하고 더 선택하고 더 조직․개발․통제하는 공부와 기술이 필요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 필요한 공부와 기술을 곧 ‘문장작법(文章作法)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 『문장강화』22p.


 위 글에서 ‘설계’, ‘선택’, ‘조직’, ‘개발’, ‘통제’의 어휘는 글쓰기의 기술적 성격을 여실히 드러낸다. 이것 뿐만이 아니더라도 『문장강화』에서는 글의 곳곳에서 글쓰기에 대한 기술적인 생각을 드러내는 구절들이 많다. 〈언어는 철두철미 생활용품이다.>[각주:1], 〈말도 역시 신이 아닌 사람이 만든 한낱 생활도구다. 완미전능(完美全能)한 신품(神品)이 아니다.>[각주:2],〈훌륭한 문장가란 모두 말의 채집자, 말의 개조․제조자들임을 기억해야 한다.>[각주:3] 등의 구절에서 그 생각을 쉬이 유추할 수 있다.


 그렇기에 상허(尙虛) 이태준 선생에 있어서 글쓰기 기술은 ‘뽐냄’이 아니라 ‘도구적 목적 실현’에 있다. 생활 도구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 목적이다. 예쁜 도구보다 쓰기 용이한 도구가 더 좋다. 이러한 생각을 바탕을 두고 있기에, 그는 『심청전』,『장화홍련전』등의 글을 좋은 글이라 보지 않는다. 이야기를 전달하려기 보단, ‘유려한 수사법’에 가까운 글의 형태를 띠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모습조차, 책이 드물어서 낭독을 통한 책 읽기의 사회 풍토의 ‘목적’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그는 설명한다. 이러한 모습이 가장 잘 드러낸 부분이 운문과 산문을 설명할 때이다. 〈‘산문이란 오직 뜻에 충실한다’는 의식을 가지지 않으면 어느 틈엔지 음조에 관심이 가고 만다.>[각주:4] 이처럼, 글이라는 생활도구에는 종류에 따라 그 ‘목적’이 있고, 그 ‘목적’에 충실하게 써야한다는 게, 『문장강화』의 글쓰기 지론이다.


글쓰기 사용설명서,

『문장강화』


 『문장강화』도 산문으로 쓰인 글이다. 다시 말해, 그 ‘뜻’이 있다는 말이다. 그 뜻은 쉽게 말하면 ‘글쓰기 사용설명서’라고 할 수 있겠다. 주위 환경에 의해서 저절로 배우게 되는 ‘말’과 달리 ‘글’은 배워야 쓸 수 있는 ‘도구’라는 게 상허(尙虛) 이태준 선생의 생각이므로 『문장강화』는 대단히 친절한 글쓰기 사용설명서이다.


 우리가 흔히 보는 생활 도구(가전제품 등의….)의 사용설명서에는 그림이나 사진이 있다. 보다 쉽게 글을 이해하게 하려는 의도이다. 마찬가지로, 『문장강화』에는 예문이 엄청나게 많다. 책의 절반이 예문으로 채워져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한 예문을 통해, 상허(尙虛) 이태준 선생이 하고자 하는 말의 의미를 시각적으로 이해할 수가 있다.


 또한 『문장강화』는 글 자체가 눈에 띄지 않는다. 이게 무슨 말이냐면, ‘글쓰기 사용설명서’인 만큼, ‘사용설명’을 이해하는 데 중점을 두지, 사용설명‘글’을 읽는 데 중점을 두지 않는 다는 말이다. 그래서 『문장강화』의 글은 화려하지도 않고, 웅장하지도 않는다. 오로지 ‘글의 목적’에 맞게 쓰인 것이다. 마치, 장자에서 나오는 “득어망전得魚忘筌”(물고기를 잡고 나면 통발을 잊어버린다.)의 글쓰기의 예를 보여주는 것 같다. 사용설명서의 ‘글’은 잊어버리되, ‘어떻게 사용하는 지’는 알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이렇듯, 『문장강화』는 양반보다는 선비 혹은 평민의 모습에 가깝다. 글에는 왠지 대단한 비밀이 담겨있을 듯 말하며, 글쓰기를 멀리 떨어지게 만드는 글이 아니다. 글쓰기는 누구든지 어디서나 쓸 수 있는 ‘생활 도구’이고, 그 ‘생활 도구’를 잘 쓰는 법을 알려주는 ‘생활적인 글’이다.


 그동안 ‘글쓰기’의 목적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고, 어떤 글보다도 생활 속의 글이기에 『문장강화』도 60여 년이 지난(1947년 출판) 지금도 충분히 유의미하다고 본다. 글에 대한 환상과 착각이 생겨난다면, 『문장강화』를 읽음으로써 글쓰기의 ‘본질과 목적’에 대해 되새길 수 있는 시간이 될 것이다.

  1. 이태준, 『문장강화』33p [본문으로]
  2. 위 책, 37p [본문으로]
  3. 위 책, 38p [본문으로]
  4. 위 책, 104p [본문으로]
지나가다가 | 2010.04.18 23:04 신고 | PERMALINK | EDIT/DEL | REP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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