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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2.09 00:36
일하며 논다, 배운다
김종휘 외 지음/민들레

노리단은 무엇일까?

『일하며 논다, 배운다.』는 '노리단'에 대한 책이다. 그렇다면, 노리단이란 뭔가? 요상한 악기들을 만드는 장인 집단? 그런 악기들로 워크숍을 진행하는 강사? 아니 아니, 재밌는 퍼포먼스와 악기를 이용한 공연을 진행하는 악단? 결국, 만들고, 가르치고, 공연하면서 돈을 버는, 잡다한 거 다하는 문화집단일까?

 별별 질문을 던졌던 사람으로서, 나의 대답을 말하자면, 노리단은 '삶의 흔적'이고, '희망이라는 가능성의 길'이다. 잉? 무슨 소리냐고? 글쎄, 계속 들어보시라. 이것을 이해하려면 우리의 '삶의 흔적'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고 있던가?

 온갖 미디어가 말한다. 경제위기, 경제위기, 그러지 않아도 삶은 팍팍하고, 경기는 구렸는데, 거기에 경제위기라니? 눈앞이 캄캄, 두 발이 후들후들, 가슴은 콩닥콩닥. 이거 도대체 어떻게 살아가란 말인가? 그럴 때 대부분 사람들이 행동은 비슷해진다. '다른 사람의 흔적'을 찾는 것. 상상해봐라. 어둠 속에서 길을 헤맸을 때, 사람의 흔적을 찾지 않던가? 그런데 문제가 있다. 그 흔적이 '제대로 길을 찾은 사람의 흔적'이라고 어떻게 확신할 수 있지?

 그저, 믿을 뿐이다. "이 흔적을 남겼던 사람을 따라가다 보면 길이 나오지 않겠어?"라는 생각과 함께. 우리들의 모습이 딱 그 꼴이다. 어둠 속에 길을 헤맸는데, 일단 사람의 흔적이 있는 데로, 많은 사람이 가는 데로, 따라가는 것이다. 오, 그 흔적에 첫발을 내딛뎠던이가 부디, 헤매지 않기만을 빌면서….

 잘나가는 초·중고를 졸업해서 마침내 자랑스러운 학벌을 따는 것. 학벌을 따고 나서는 많은 이들이 하듯이, 각종 고시 골짜기에 들어가는 훈련을 하는 것. 혹은 학벌 늘리기로 조금 더 시간을 번 다음, 왕기업이라는 천국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 그게 우리가 하고 있는 것이 아니던가? 거기에, 고시 골짜기도, 천국도 못 미더워서 부동산과 주식을 통한 미래 구입하기 등등.

 오, 이들을 감히 누가 손가락질 할 수 있으랴?! 경기침체는 오랫동안 못 벗어난다고 하고, 곧 비정규직은 50%가 넘을 것으로 보이며, 왕기업에 비해 쪼만한 기업은 얼마나 열악한 환경이며, 취업은 짧고 노후는 긴데 미래에 대한 보장자산은 필요하지 않은가?

 수많은 사람들이 밟았던 '흔적'이 있으며, 지금도 주위를 둘러보면 다 그 길을 향해 뛰어가고 있는데, 그 '길'이 맞을 확률이 높을 거라 믿는 것은 당연한 거 아냐? 그런데 다른 길을 걷는 사람들이 있다. 어둠 속에서 더듬더듬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한 걸음 한 걸음 내딛는다. 다른 누구의 '흔적'이 있는 것도 아니다. 도무지 '길'이라고 하기에 민망한 환경이다. 그렇지만, 자신이 원하는 방향이라 믿고, 망설이지 않는다. 그러면서 누구보다 행복하다고 자신한다.

 이쯤 되면 누구를 말하는지 알겠지? 바로, '노리단'이다. 그래, 나는 노리단을 '삶의 흔적'으로 느꼈다. 눈앞 깜깜, 다리 후들, 가슴 콩닥의 시대에도 자신만의 '흔적'을 남기고, 마침내 그것을 '길'로 만들어내는 모습. 바로, 그게 노리단이다.

노리단의 흔적은 어떤 모습?

 그렇다면, 노리단은 어떤 흔적을 남기고 있을까? 그네들의 흔적은 실로 다양하고, 가지각색이라 여기에서 몽땅 말하기에는 어렵다. [알고 싶으면, 1. 책을 읽고 2. 노리단의 공연을 보고 3. 노리단의 들어가시라(응?)] 그중에 몇 가지의 흔적들을 살펴보자. 당연히, 내가 좋아하는 흔적들이다. :)

 하나, 통합

 노리단은 통합을 지향한다. 그러나 우리 삶은 낱낱이 나뉘어 있고, 그 연결을 상상하지 못하게 되어버렸다. 무슨 말이냐고? 아래를 보시라.

 
 교과목에 길들여진 사고방식의 틀은 통합적으로 이뤄진 인생을 낱낱으로 바라보게 만든다. 그 대표적인 인생론의 하나가 바로 놀이와 예술과 공부와 직업을 분리하는 것이다. 이런 인식은 통합되고 연결되어 있는 경험을 각각 쪼개서 독립된 것으로 생각하는 작위적 태도를 낳는다. 이런 태도는 통합된 하나의 전체를 이해하는 것보다 에너지를 많이 소모하게 되고 힘들어지기 때문에 손쉽게 흑백논리식 선택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게 한다. 덜 놀아야 더 공부할 수 있고, 직업이 안 되는 예술은 사치이며, 놀면서 돈을 버는 것은 예외라고 치부하게 된다. 26쪽

 '덜 놀아야 더 공부할 수 있고, 직업이 되지 않는 예술은 사치이며, 놀면서 돈을 버는 것은 예외라고 치부'하는 것, 이 얼마나 '당연한' 생각인가? 어떻게 놀면서 공부가 되고, 직업도 되지 않는 예술을 하며, 놀면서 돈 버는게 가능한가? 그러나 노리단은 시도했다. 노리단은 '악기 제작' - '워크숍' - '공연'을 순환적으로 하면서, 통합적인 모습으로 살아간다. 일도 하고,(악기 만들기) 놀기도 하고,(공연), 공부도 한다,(워크숍). 그리고 이 모든 것은 '예술'이고 '직업'이다. 두근두근 거리지 않는가? 이렇게도 살아갈 수 있다니!

 둘. 삶과 배움은 하나

 '평생교육'이라는 말이 여기저기서 둥둥 떠다니는 시대, 우리는 무엇을 배워야 할까? 누구보다 높은 학력과 학벌을 따는 방법? 직장에서 가장 빠르게 승진하는 법? 승자독점시대에서 승자가 되기 위한 비책? 아니 아니, 이 모든 것이 필요하다!

 그런데 노리단은 이와는 다른 것을 추구한다. "여럿이 함께 일하는 능력, 관계를 읽고 대처하는 능력, 타인의 문제에 관심을 갖는 능력,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는 능력, 자신을 통제하고 관리하는 능력, 돌봄을 이해하고 실천하는 능력"을 배우는 게 중요하단다. 도대체 왜? 더불어 살아가고, 행복하게 살아가고자….

 그렇다면 어떻게 배우는가? 교과서를 통해? 베스트셀러? 동영상 강의? 아니 아니, 바로 '삶'을 통해서 배울 수 있다고 한다. 여러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예상치 못한 어려움을 부딪쳤을 때, 자신을 돌아보면서 알아가는 거란다. 결국, 배움은 삶 너머에 있는 무엇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얻을 수 있다는 말이다. 이럴 수가, 언제나 이 시대의 부모, 선생이 하는 말이 있지 않은가? "일단, 의자에 앉아!" 완전히, 다른 배움의 흔적이다.

 셋. 달라지기.

 노리단은 한국 사람 같지 않다는 말을, 자주 한다고 한다. 맞다. 나도 얼마전(2008년 11월)에 노리단 공연을 보았는데, 희한했다. 기묘한 분위기 속에서 그네들은 마치, '이 세상' 사람이 아닌 듯했다. 이에 대해 이런 구절이 있다.

 한국사회에서는 같지 않으면 불안해하고, 개성을 말해도 실은 누군가를 흉내 내는 것이라서 다른 이미지를 만들고 싶었다. 어린이 합창단을 봐도 전부 똑같은 옷에 똑같은 동작이고 동요 대화를 봐도 솔로든 중창이든 표정이 똑같다. 이 때문에 노리단에서는 동작이든 연주든 표정이든 어느 순간 서로 똑같아지는 것 같으면 난리를 친다. 큰 틀에서 같이 가지만 세세하게는 전부 다르게 드러나는 동작과 연주와 표정을 연습했다.

"우리는 같아지면 실패하고 서로 달라지면 성공한다" 이런 말을 되뇌일 정도이다. 88쪽

 "같아지면 실패"라니…. 이토록, 노리단은 다름을 추구한다. 흔히 다르면, 어떻게든 똑같아지려고 '말과 행동'으로 동화되는 걸 강요하지만, 노리단은 아니었다. 노리단에게 있어 '차이'는 그 자체로 '다양하고 풍부하다는 증거'이다. 차이를 노리단을 풍부하게 만드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모두가 각각 다르면서 그 다름 자체가 노리단이 되는 삶을 택한 것이다.

 이렇게 노리단은 더듬더듬 자신의 길을 찾아나가면서 성장했다. 이를 한 문장으로 말하자면, "알기 때문에 하는 것이 아니라 하다 보니 알게 된다는 것, 몰라서 질문하고 해결하고, 그렇게 하고 나니 성장하는 것이다."(87쪽) 많은 이들이 '아는 길'이 아니면 걷지 않은 것에 비해, 이들은 '길을 걸으면서 알아갔다.' 그렇게 노리단의 삶의 흔적을 만들어냈던 것이다.

노리단은 특별하다?

 이쯤 되면, 꼭 나오는 말이 있다. "그네들은 특별하니까…." 그리고 줄임표에는 이 말을 숨겨져 있다. "나는 평범한걸." 과연 그럴까? 노리단은 특별할까? 확실히, 노리단은 '달라'보인다. 다른 이들은 어둠 속에서 다른 이들이 만들어 놓은 흔적을 따라갔다면, 그네들은 자신만의 흔적을 만들었다. 그렇다면, 그들은 평범하다 못해 찌질한 우리네와는 다른, '피'를 타고났거나, '끼'가 넘쳐나거나 하는 '돌연변이'일지도 모른다. 그래, 그랬던 거야….

여기서 잠시, 직접 노리단을 경험한 이의 말을 들어보자.

 내가 단원 활동을 그렇게 시작했듯이 노리단은 이번에도 특별한 끼를 가진 사람을 가려서 뽑지는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은 누구나 특별하다는 것,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그것 자체로 의미가 있다는 것, 서로 특별함을 발견해서 잘 어우러지게 하니까 특별한 존재가 된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는 곳이 노리단이기 때문이다. 130쪽

 이 말을 믿는다면, 노리단은 특별하다. 그리고 당신 또한 특별하다. 하핫. 결국, 당신이 특별한지 않은 지에 대해서는 '머리'는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는다. '행동'만이 그것을 말해줄 뿐. 노리단은 자신들이 '특별'하다는 것을 알고, 다른 길을 걸었을까? 다른 길을 걸었기에 '특별'하다고 사람들이 '알게 된' 걸까? 나는 그저, 당신이 노리단과 같이 살든 그렇지 않든, 특별하고 행복한 삶을 살아가길 바랄 뿐이다.^^

Favicon of http://zeehwa.tistory.com BlogIcon 紙花 | 2009.02.09 18:27 신고 | PERMALINK | EDIT/DEL | REPLY
완전 멋지군요!! 부럽다아 ㅠ0ㅠ
Favicon of http://trueandmonster.tistory.com BlogIcon 람바울여 | 2009.02.10 20:43 신고 | PERMALINK | EDIT/DEL
노리단과 다르면서도, 노리단처럼 살면 되죠.ㅋ
Favicon of http://goma.pe.kr BlogIcon 고마 | 2009.02.09 22:32 신고 | PERMALINK | EDIT/DEL | REPLY
굉장히 성실한 서평입니다. 감동가지 받았습니다. ... 노리단에 계시는 분을 오래 전에 뵌 적이 있어요. 참 부러웠지요. 그 때는 사실, 한국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그런 생각도 들었는데 공연 소식이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걸 보면, 정말 다행이다 싶어요.
Favicon of http://trueandmonster.tistory.com BlogIcon 람바울여 | 2009.02.10 20:44 신고 | PERMALINK | EDIT/DEL
끊임없이 변화하며 성장하는 곳이라는 느낌이라, 앞으로가 더더욱 기대되요.
광인 | 2009.08.03 08:30 신고 | PERMALINK | EDIT/DEL | REPLY
아하. 지금 저에게 있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사실 노리단에 입단 하려고 하는데 복잡한 생각에 힘들어 하고 있었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기에 감사의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ㅎㅎ 제가 생각지 못한 부분을 많이 알고 느낀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여울바람님.
| 2009.09.20 10:24 | PERMALINK | EDIT/DEL | REPLY
비밀댓글입니다
Favicon of http://www.facebook.com/profile.php?id=100003406160931 BlogIcon Trinath | 2012.06.22 21:53 신고 | PERMALINK | EDIT/DEL | REP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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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1.05 20:46
스웨터
글렌 벡 지음, 김지현 옮김/웅진지식하우스(웅진닷컴)


* 본 글은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마음에 들지 않는 선물


 선물을 받는다는 건, 기분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누구나 한 번쯤 마음에 들지 않는 선물을 받아본 기억이 있을 거에요. 어떤 선물을 애타게 기다렸지만, 그게 아니었을 때의 아쉬움. 게다가 그 이유가 '어찌할 수 없는' 것이 되면, 아쉬움을 너머 서러운 마음이 들지요. 『스웨터』의 주인공 에디가 겪는 '가난'은 바로, 그 '어찌할 수 없는' 것 중 하나입니다.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니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모든 이들의 잘못인 것처럼 느껴지는 마음. 크리스마스날, 에디가 자신이 원하는 '검은색 바나나 모양 안장이 달린 빨간색 허피 자전거'가 아닌 '스웨터'를 받았을 때의 마음이 바로 그런 것이겠죠.

스웨터의 의미 _ 가난

 크리스마스날 에디가 받은 '스웨터'라는 선물은 단지, '스웨터'라는 의미만을 갖는 게 아닙니다. 에디는 그동안 자신이 원하는 '자전거'를 받으려고 엄청난 노력을 기울였어요. 당연히, 에디 엄마가 에디가 원하는 선물이 '자전거'임을 모를 리는 없지요. 그러나 그런 노력에도 결국 크리스마스 선물은 '자전거'가 아닌 '스웨터'였습니다. 그건 에디의 가족이 '자전거'를 사주기에는 가난했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가족이 가난하다는 사실을 모를 정도로 에디는 어리지 않습니다. 그래도 에디는 속상하고 서럽습니다. '가난'하기 때문에 '자전거'를 받고자 그토록 정성을 기울였는데 말이죠. 결국, 아직 어린 에디로서는 '가난한 가정'이라는 주어진 상황은 당장은 어떻게 벗어날 수 없는 거에요. 에디도 압니다. 이건, 엄마의 잘못이 아니라는 거. 어쩔 수 없다는 거. 그렇지만, 에디의 마음은 쉽게 스웨터에 만족하지 못합니다.

"우리 집이 돈이 많지 않다는 건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때까지도 나는 엄마의 어깨를 짓누르는 부담감이 얼마나 큰지 알지못했다. 매일 출근하면서 백화점에 진열된 새 자전거를 지나치는 엄마 모습을 그려보았다. 내가 원하는 자전거가 어떤 것인지 너무나잘 알면서도 사줄 수 없는 엄마였다. 내가 원하지도 않았고 엄마가 사줄 수도 없었던 스웨터를 쳐다보는 모습도 그려보았다. 털실을사서 매일 밤 뜨개질을 하면서 어쨋든 내가 엄마의 사정을 이해해주고 결국 자전거만큼이나 스웨터를 좋아해줄 것이라고 위로했을것이다. 하지만 엄마도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내가 그럴 수 없으리란 걸 알고 있었을 것이다"
_ 『스웨터』(웅진지식하우스, 2008), 81-82쪽

스웨터의 의미 _ 온전하지 않는 가족

 누구의 잘못을 따질 수 없는 가난을 수긍하지 못하는 에디는, 누군가에게 잘못을 따져 묻고 싶습니다. 그래서 에디는 아버지가 돌아가시지만 않았더라면, 자전거를 받을 수 있는 형편이 되었을 거로 생각해요. 자신이 크리스마스날, 그토록 원하는 자전거를 받지 못하는 이유, 그걸 아버지의 부재 때문이라고 믿는 거지요. 그리고 그 아버지가 죽은 현실이 밉습니다. 세상과 그 세상을 만든 신이 미운 거지요.

 에디의 표현대로 '온전한 것'이 아닌 가정과 이러한 상황이 잘못되었다고 판단합니다. 이런 건 제대로 사는 게 아닙니다. 에디가 보기에 다른 아이들은 부모가 모두 살아있고, 집에 빗물이 새지 않으며, 선물로 새 자전거를 가질 수 있어 보입니다. 그런데 자신은 '예외'인 것이지요. 이러한 모습이 너무도 싫은 나머지, 이런 말까지 합니다.

"제대로 살았으면 좋겠어요." 나도 모르게 그런 말이 튀어나왔다. "친구들처럼요." 어쩔 수가 없었다. 하루 종일 쌓였던 짜증과 분노가 한 번에 터져나와 버린 것이다.
_ 『스웨터』(웅진지식하우스, 2008), 108쪽

 에디에게 있어 지금, 여기에서 사는 것은 '제대로 사는 게' 아닙니다. 아버지의 부재부터, 그로 인한 가난. 그러한 상황 때문에 '자전거'가 아닌 '스웨터'를 크리스마스 선물로 받는 것까지. 이 모든 것, 바로 살아가는 그 순간을 부정하는 것이지요. 에디에게 있어, 크리스마스 선물로 받은 '스웨터'는 그 '현실'을 드러내는 것이기에 그토록 서럽고 억울한 것입니다. 그 후, 에디 엄마의 사고사로 시작되는, 기나긴 악몽을 꾸게 되지요. 그게, 단순히 악몽이었는지, 신이 에디에게 크리스마스 선물로 준 또 한 번의 기회였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에요. 그리고 에디가 다시 '스웨터'를 크리스마스 선물로 받게 될 때에는 스웨터의 의미가 완전히 달라집니다.

다시 받은 스웨터의 의미 _ 지금, 여기에서 함께 있는 이의 소중함

 악몽에서 깨어나 다시 받은 스웨터가 알려주는 시점은 처음 받았던 때와 같습니다. 바로, '지금, 여기의 현재'이지요. 그러나 에디에게 있어, '현재'가 갖는 의미는 완전히 달라져 있습니다. 처음 받은 스웨터가 알려주는 현재는 가난하고 아버지가 없는 온전하지 못한 모습을 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시 받은 스웨터는 '지금, 여기에서 함께 있는 에디 엄마의 모습을 담고 있지요.

 즉, 에디는 똑같은 스웨터로부터, 똑같은 현재로부터 전혀 다른 의미를 부여한 것입니다. 상투적으로 말하자면, 자신에게 없는 것을 생각하기보다, 지금 자신이 가진 것의 소중함을 생각하는 것이지요. 그리고 에디에게 있어서 소중한 건, 바로 에디의 엄마였습니다. 그래서 에디는 그토록 갖고 싶은 자전거가 아닌 스웨터에 정말 감사하고 행복해합니다. 자신에게 있어서, 자전거보다 훨씬 소중한 것은 엄마이며, 스웨터는 그 엄마가 함께 있음을 알려주는 선물이거든요.

 여전히, 에디의 집은 가난하며, 아버지가 없는 현실입니다. 그건 달라지지 않았어요. 하지만, 에디는 '자신'을 알게 됩니다. 자신이 어느 때, 무엇 때문에 행복감을 느끼는지 말이에요. 에디에게 있어 아마도, 그건…. 자전거가 아니었나 봅니다.^^


"에디, 자전거처럼 사소한 물건이 너를 행복하게 해줄 수 있다면 나는 처음부터 이걸 선물해줬을 거야. 하지만 자전거는 그럴 힘이 없단다. 그 어떤 물건도 너에게 행복을 주지는 못해. 너를 영원히 행복하게 해줄 무언가는 네 안에서 찾아내야 하는 거야. 그건 가게에서 살 수 있는 게 아니란다."
_ 『스웨터』(웅진지식하우스, 2008), 184쪽

Favicon of https://nopdin.tistory.com BlogIcon 노피디 | 2009.01.09 07:59 신고 | PERMALINK | EDIT/DEL | REPLY
리뷰가 너무 좋아요. ^^
괜히 마음이 따뜻해지는 느낌이랄까.
마지막 반전(?)이 좋았어요.
Favicon of http://www.tnfoutletstoreus.com BlogIcon north face outlet | 2012.12.05 16:50 신고 | PERMALINK | EDIT/DEL | REP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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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2.11 08:36
좁은 문
앙드레 지드 지음, 이혜원 옮김/펭귄클래식코리아(웅진)



이런, 씨바

 앙드레 지드의 『좁은 문』을 읽는 동안 머리 속에서 내내 떠나지 않는 말이 있었다. 이런, 씨바. 이 책, 현기증으로 나를 어지럽게 했다. 다시 말해서, 머리로 이해하려고 하였으나, 그보다 마음이 먼저 앞서나가 카오스로 뒹그렁 하고 빠져버렸단 말이다. 하여, 앙드레 지드의 『좁은 문』은 요러요러하고 이러이러해서 저러저러한 책이다. 라며, 짐짓 '나는 결코 흔들리지 않는 곧은 나무인 듯' 폼 잡는 글, 못쓰겠다. 대신, 시리면서 아릿한 아픔, 주먹을 불끈 쥐고 바들바들 떠는 분노, 그럼에도 그런 아픔을 사랑할 수 밖에는 무력감, 이런 혼란 고대로 보여주겠다. 그게 내가 『좁은 문』을 읽은 느낌이다.


제롬, 아프다 내 마음


 내가 그 누구보다 감정이입이 잘 되었던 이, 그건 제롬이다. 제롬은 처음부터 끝까지, '알리사'만을 좋아한다. 그래, 이 놈 순정파다. 순정파는 죽어라 한 사람을 사랑할 뿐만 아니라, 죽어라 한 사람만을 '바라본다.' 한마디로 다른 곳 볼 줄, 모른다. 아름다운가? 뭐, 그래. 남이 보기엔 아름다울 지도 모르지. 허나, 세상은 영화처럼 순정파가 행복해'져야만'하는 곳이 아니다. 오히려, 그 순정, 쌉싸름하게 변할 때까지 죽어라 마음 아프게 하는 원인이 되는 경우가 다반사.

 그래서 순정파 제롬의 '아름다웠던 시절'은 잠깐 뿐이다. 사랑하는 알리사의 여동생, 쥘리에트가 자신에게 고백하는 순간부터, 아니, 어쩌면 알리사를 좋아했던 순간부터 지독한 아픔은 예정된 수순이었다. 나중에 알겠지만 알리사와는 사랑의 방식이 전혀 달랐으니까. 어찌됬든, '어느 순간' 부터, 알리사는 변한다. 뭐, 변한다기 보다는 원래 그렇게 될 미래였는지도 모르겠지만. 그러한 변화의 순간, 제롬은 불안하다. 본능적으로 자기가 겪게 될 아픔을 느꼈는지도.

 다짐했던 바대로 나는 일요일마다 그녀에게 긴 편지를 썼다. 그 외에 다른 날에는 같은 반 친구들과는 거리를 둔 채 오로지 아벨하고만 어울려 지내며 알리사에 대한 생각에 젖어 살았고 나 자신이 관심 있는 것들보다 알리사가 좋아할 만한 내용을 우선시하여 내가 좋아하는 책에 그녀가 알아보기 편하게끔 표시를 잔뜩 해두었다. 그녀의 편지들은 여전히 나를 불안하게 하는 구석이 있었다. 내 편지에 꼬박꼬박 답장을 하긴 했지만 내게 응하는 그러한 열의 속에는 순수한 마음의 이끌림보다는 내 공부를 격려하기 위한 배려의 마음이 더욱 도드라져 보이는 것만 같았다. 또한 작품의 평가와 논의, 비평 등이 나에게는 내 생각을 표현하는 방법에 지나지 않는 데 반해 그녀에게는 자기 생각을 내게 숨기기 위한 방편으로 사용되고 있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간혹 그녀가 재미 삼아 그러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품어볼 정도로…… 하지만 아무래도 좋다! 일절 불평을 않기로 굳게 마음먹은 나로서는 그러한 불안한 마음이 편지에는 조금도 드러나지 않도록 조심했다. _ 펭귄 클래식, 74-75p

 이때 느꼈던 불안은 훗날, 제롬이 겪게 될 아픔을 본능적 느낀 건지도 모른다. 그러나, 제롬은 알리사를 너무도 좋아해서, 이런 불안을 감히 말할 수 없다. 그래서 알리사에게 보내는 편지에도 이러한 '불안'을 일절 드러내지 않는다. 허나, 상처가 생기면 그때그때 치료해야지, 놔두면 곪게 된다. 본능적으로 느꼈던 불안을 애써 무시했던 제롬은 곧 그 대가를 받게 된다.

"제롬!" 그녀는 내 쪽으로 시선을 돌리지도 않고서 말했다.

"나는 네 곁에 있으면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하다는 느낌이 들어…… 하지만 우리가 행복을 위해 태어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

"그럼 인간의 영혼이 행복 외에 더 무엇을 바라야 한단 말이야? 나는 흥분한 나머지 격한 어조로 물었다. 그녀가 중얼거렸다.

"성스러움……." 이렇게 말하는 그녀의 음성이 너무도 낮았기 때문에 내가 그 말을 들어다기보다는 그렇게 추측한 것에 가까웠다.

 내 모든 희망이 날개를 펼치고 나에게서 도망쳐 하늘로 날아가 버렸다.

"난 너 없이는 그곳에 이르지 못해." 나는 이렇게 말하고 난 뒤 어린애처럼 그녀의 무릎에 얼굴을 파묻고, 서글퍼서라기보다는 사랑에 복받쳐 울음을 터뜨리며 말을 이었다. "너없이는 못해. 너 없이는 못한다고!" 

_ 펭귄 클래식 139p

 알리사의 변화는 여기에 와서 절정을 달린다. 그리고 그 변화의 이유도 밝혀진다. '인간의 행복'보다 더 중요한 '성스러움'이 중요해서라니! 이때, ' 내 모든 희망이 날개를 펼치고 나에게서 도망쳐 하늘로 날아가 버렸다.'에 서 얼마나 내 마음이 쓰렸는지.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는 줄, 함께 가고 있는 줄 알았던 알리사는 다른 곳, 다른 길을 걷고 있었으니 그 이루 못할 상실감과 고독감을 어찌하랴. 그 이후 부터, 제롬은 계속 감정의 혼돈 속에서 허우적거린다. 희망이 없을 수록, 더욱 희망에 매달리는 법. 제롬은 알리사에 대한 사랑을 멈출 수가 없다. 세상에는 마음이 멋대로 움직일 때가 있는 법. 그래서 헛된 희망을 품어보기도 하고(그 순간 얼마나 희망에 우쭐했던지! 그때까지도 나의 슬픔은 모두 내 탓이라고 자책하고 있었으므로, 그녀의 말 한마디만으로도 내 마음의 병은 씻은 듯 나을 수 있었으리라. 148p), 차마 알리사를 탓할 수 없어서 자신을 원망하기도 한다. (그러고 나면 나는 곧 모든 불평을 나 자신에게 돌렸다. 그것은 그녀에 대한 비난에 빠져 들고 싶지 않아서기도 했지만, 내가 그녀에게서 무엇을 기대했는지 , 그녀를 무엇으로 비난할 수 있는지 더 이상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154p) 
 
 결국, 순정파 제롬은 알리사에 대한 사랑을 버리지 못한다. 소설의 후반부에 쥘리에트는 묻는다. "희망 없는 사랑을 그렇게 오래도록 마음속에 간직할 수 있다고 믿는 거에요?"  이에 제롬은 답했다. "그래,쥘리에트." 이정도면 순정이 거의 신앙급이다. 이토록 변치 않는 마음을 보며, 분노, 짜증을 넘어, 그저 마음이 아플 뿐이다. 특히, 아래의 한 줄에 너무도 아릿했다.

 아니, 그때도 나는 그대를 책망하진 않았소, 알리사! 다만 지날날의 그대 모습을 더는 알아볼 길이 없었기에 절망하여 울었던 거요. _ 펭귄 클래식, 144p

 

알리사, 너 행복하니?

 『좁은 문』에서 나를 혼돈으로 빠뜨린 주요한 원인, 그게 알리사다. 어렸을 적부터 제롬과 연인이었던, 알리사. 알리사에게 있어서, '제롬'에 대한 사랑은 어떤 의미였을까? 어렸을 때부터 서로를 원했고, 함께 있어서 즐거웠던 사이. 그러나 제롬이 알리사에게 부여하는 의미와 알리사가 제롬에게 부여하는 의미는 애초부터 달랐는지도 모른다. 아직, 알리사가 어렸을 적 그의 아버지와 대화하는 부분에서 알리사가 제롬에게 부여하는 의미를 유추할 수 있다.

"아버지는 그 애가 훌륭한 사람이 될 거라고 생각하세요?"

이 대목에서 외삼촌의 음성이 높아졌다.

"애야, 네가 어떤 의미로 '훌륭한'이란 말을 쓰는 것인지 난 무엇보다도 그걸 알고 싶구나! 보기엔 그렇지 않아도, 그러니까 인간의 눈에는 그렇게 보이지 않더라도 사실은 아주 훌륭한 사람도 있는 법이야…… 하느님이 보시기에 아주 훌륭한."

"저도 그런 뜻으로 한 말이에요."

"게다가…… 그걸 어떻게 알 수 있겠니? 그 애는 아직 어리단다…… 물론 장래가 아주 유망하기는 하다만, 성공하자면 그것만 가지고는 안 되는 법이지……."

"그럼 또 뭐가 필요한데요?"

"글쎄, 뭐라고 하면 좋을까? 신뢰라든가, 도움이라든가, 사랑이……"

"도움이라니, 뭘 말씀하시는 거에요?" 알리사가 말을 가로챘다.

"내가 받을 수 없었던 애정과 존경 말이다."

외삼촌이 쓸쓸하게 대답했다. _ 펭귄클래식 37p



 한 번 생각해보자.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은 그가 '훌륭하기' 때문인가? 아, 물론 여러 좋은 점이 훌륭하게 보일 수는 있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누군가를 좋아하는 것은 그 사람의 장·단점의 모든 것을 사랑하는 것. 세상에 완벽한 사람 없고, 흠 없이 깔끌한이는 없는법. 훌륭한 사람만 사랑하한다면 도대체 누구를 사랑한단 말이더냐. 

 그렇다면 지금, 알리사가 하는 것은 사랑이 아니냐? 그런 것은 아니다. 사랑하기에 '훌륭한 사람'이 되기를 바라는 것은 한 가지 있을 수 있다. 바로, '부모(보호자)로서의 사랑'이다. 훌륭한 사람이 되어라. 이 소리를 부모님이 하지, 애인이 하던가. 결국, 알리사의 사랑은 '혼돈으로 빠져드는 뜨거운 감정'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한 사랑은 알리사와 제롬의 미래가 밝지 않을 것임을 암시한다.

 본격적으로 알리사가 제롬에 대한 태도를 바꾼 사건은 '쥘리에트 고백'사건 이후다. 자신이 사랑하는 친동생 '쥘리에트'가 '제롬'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 또 자신과 제롬을 위해 '사랑하지도 않는 사람'과 결혼을 하려는 것을 알게 된 사건이다. 그 후 알리사는 제롬을 만나지 않고 멀리하는 등, 태도가 완전히 변한다. 그 이유를 '쥘리에트'와 '제롬'을 위해서라고 믿는 알리사. 그게 말이 되? 사랑에 빠져서, 머리보다 마음이 먼저 나오는 사람이 할 수 있는 행동이야? 자기가 쥘리에트와 제롬의 '엄마'라도 되는 줄 단단히 착각하는 거야? 여하튼, 알리사는 이때부터 돌이킬 수 없는 길을 선택한다.

 지금껏 자신이 느꼈던 모든 '행복'을 부정하고, 오직 '성스러움'에만 집착하는 것이다. 자신이 있으면, 제롬이 훌륭한 사람('신'만을 바라보는 사람)이 되지 못함을 슬퍼하는 알리사. 하루 빨리 제롬이 자신을 잊고 '신앙적 동반자'가 되길 원한다. 이를 위해 기도하는 장면이 있다.

 주여! 제롬과 제가 함께, 서로 의지하며 당신 앞으로 나아가도록 하여주옵소서. 한 사람이 다른 이에게 "형제여, 힘들면 내게 기대게."라고 한다면 "자네를 내 곁에서 느끼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네."라고 답하는 두 순례자처럼 인생의 길을 따라 걷게 하여주옵소서. 주여, 아니되옵니다! 주께서 우리에게 가르쳐주시는 길은 좁은 길이옵니다. 둘이서 나란히 걸을 수도 없을 만큼 좁은 길이옵니다._ 펭귄 클래식 185p

 이러한 기도는 다시는, 알리사와 제롬이 '연인'관계가 될 수 없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기도에서 알리사가 말하잖는가. '둘이서 나란히 걸을 수도 없을 만큼 좁은 길이옵니다.'.  나란히도 걸을 수 없는 사이. 그게 무슨 연인인가. 그렇게 알리사는 이해할 수 없는 신앙심으로 홀로 여행을 떠나버리고, 얼마 안가 병을 얻어서 죽는다.

 여기까지 읽으니까, 참으로 심란하고 이해할 수가 없더라. 그런데 소설에는 '알리사의 일기' 부분만을 따로 싣는다. 알리사의 시점에서 바라본 이야기는 알리사가 지녔던 마음을 속속들이 보여준다. 일기장에서 가장 눈에 띄는 모습은 '이해할 수 없는 신앙심'에서, '어느 정도 이해 가능한 인간의 나약한 마음'으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그렇다. 사실, 알리사는 무척이나 '제롬'은 '연인'으로서 사랑했었다. 그 뿐인가, 쥘리에트를 위한 행동을 '희생'이라 스스로 여기면서, 그 희생의 가치가 바래거나, 인정하지 않을 때에 속으로 가슴 졸였던 것이다. 그런 흔들림 속에서도 자신이 믿고 있는 신앙을 향해 한걸음 한걸음씩 나아갔던 게, 알리사의 참모습이다. 아아, 얼마나 인간적인가. 신의 가르침을 그대로 따르는 것은 천사이지 인간은 아니다. 인간은 언제나 번뇌하기 마려인 것을. 그러한 가운데서도 알리사의 '의지'는 대단하였고, 결국 제롬조차 그 마음을 모를 정도로 속였던 것이다.

 미안하지만, 나는 그러한 알리사의 '정신'. 하나도 칭찬하고 싶지 않다. 알리사가 그토록 지키고자 했던 '성스러움', '신으로부터의 의무'는 과연 '인간의 행복'보다 중요한 것일까? 제롬은 말했다. "너 없이는 그곳에 이르지 못해." 행복하지 않는 인간이 다가가는 성스러움은 아름다울 수 있는 걸까. 나는 사소하고 그리 대단치 않는 한 마리 '인간'이란 동물이 느끼는 행복감, 그게 더 소중하다. 그 의지가 절정에 다른 알리사의 일기장에 알리사는 오히려 '행복'을 두려워 하는 것 같았다. 마치, 행복한 인간은 성스러울 수 없다고 믿는 듯이. 나는 그러한 삶을 선택한 알리사는 이해할 수 없었다. 제길, 앙드레 지드는 그토록 성스러움을 추구했던 알리사가 후에 천국으로 갔다는 한 줄 쓰지 않았단 말이다!


그리 대단치 않는 행복감, 그게 사랑이 아니더냐.


 영원한 사랑을 갈구한 순정파 제롬과 성스러움을 추구한 알리사. 이 둘은 사랑에 대해 큰 오해를 갖고 있었던 거다.(난, 그렇게 생각한다.) 먼저, 제롬의 마음. 아, 어찌 그 마음을 모를 수 있으리. 첫사랑을 향한 그 끝없는 마음을. 그러나 자신의 첫사랑만, 영원하리라는 법, 당연히 없다. 알리사와의 관계에서 불안함을 느꼈던 순간부터, 제롬은 끝없이 믿고 싶은 것만 믿으면서 자위했다. 인정하기 싫겠지, 그 모든 것을. 그러나 때론 보고 싶지 않은 것도 봐야 할 때가 있다. 그게 어른이다. 또한 첫사랑만이 사랑이 아니다. 알리사와의 사랑이 '대단해'보여서 다른 사랑이 눈에 차지 않을 수 있지만, 그건 착각이다. 알리사와의 행복한 기억, 그건 그리 대단한게 아니다.

 알리사의 경우도 마찬가지. 성스러움이라는 인간이 이르기 어려운 경지에 그토록 다다르려는 이유가 무엇인가. 왜 그렇게 제롬을 위한다는 이유로, 자신도 마음이 아파하면서까지 제롬을 멀리하는가. 알리사는 '제롬과 함께'있을 때, '성스러운 경지' 이르지 못할까 두려운 것이다. 아니, 사랑이 뭐 그리 대단한 거라고…. 생각해봐라. 연인관계가 언제나 뜨겁고 격동적일 수만 있던가, 그 뜨거움을 식혀줄 때도 필요한 거지. 수많은 성인도 결국은 인간이란 말이다.

 제길, 도대체 그들은 무엇을 기대한 것일까. 어렸을 적, 서로 함께 밥을 먹고, 울기도 하고, 일을 했던 기억들. 그처럼 그리 대단치 않은 것에 대한 행복감. 그게 사랑이 아니더냐. 영원하지도 않아도 좋고, 위대하지 않아도 좋다. 그 모든 것, 완벽함을 얻지 못해도 행복할 수 있는 것. 바로, 이 점이 오늘도 많은 이들이 고백을 하는 이유가 아닐까.




추신.

 내가 이 책을 읽으며 그토록 흔들렸던 이유. 뭐겠나. 내 안에 제롬과 알리사가 있었기 때문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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