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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1/31 16:18
[끄적]
내 사랑 유리에
감독 : 고은기
주연: 고다미, 강희
제작 국가: 한국
등급 : 18세
상영시간 : 113분
장르 : 드라마
개봉일 : 1월 31일
처음부터 끝까지 '동아'의 판타지로 가득 찬 영화
영화 속에서는 주로 5명의 인물이 나온다. 순수한 소년 '동아' 그리고 동아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사는 동아의 가족과 맞은편에 사는 '몸을 파는 영자'와 그 영자의 포주이자 '아버지'인 산도적. 이상의 5명의 인물 관계 속에서 주로, '동아'의 시점으로 영화 속 이야기는 펼쳐진다. 그리고 처음부터 끝까지 들었던 생각은 "이것은 동아의 환상이 아닐까?"라는 것이었다. 더 직접적으로 말해서, '동아'가 원하는 '사랑의 판타지'를 보여준 것에 불과하다는 것, 결국, 이 영화에는 '사랑'보다는 '동아'의 욕망이 드러낸 이야기 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랑 이야기가 되고 싶은 '남성의 욕망' 이야기랄까. 그래도 나름 '사랑'을 말하고자, 그것도 '영원한 사랑'을 말하고자 하는 영화에 그렇게 심한 말을 할 수 있느냐고 물을 수도 있겠다. 그래서 하나하나 내 생각을 말해보려고 한다.
'유리에'는 오로지 동아의 '욕망' 속에서만 존재했다.
영화 제목에서 나오는 '유리에'라는 것은, 동아가 맞은 편에 사는 '영자'에게 붙여놓은 이름이다. 물론, 자기 마음대로. 영화 속에서 '동아'는 사람들이 '창녀 영자'와 섹스를 할 때마다 각자 자기가 좋아했던 이들, '영자'가 아닌 이들을 부른다고 말하는데, 그와 마찬가지로 '동아'도 영자가 아닌 자신만의 '환상' 속에서 '유리에'를 만들었던 것이다.
'오-! 그것은 돈을 주고 영자의 몸을 산 이들하고는 달리 '순수'하고 '고고'하며 '소년'일 때 하는 생각일 뿐이야!' 맞다. 확실히 '동아'는 돈을 주고 몸을 사고 싶어하지 않았다. 그러나 결국 '동아'의 '순결' 판타지를 (그렇다! 남성 판타지의 근원(?) 혹은 절정(!)이라 할 수 있는 깨끗한 '순결'에의 욕망 말이다.) '욕망'한 것일 뿐. 똑같은 '욕망' 속에 '유리에'라고 명명한 것은 같다고 할 수 있다.
실제로, 분명히 자신의 '이름'은 영자라고 말하는데도 단, 한 번도 '동아'는 '영자'에게 '영자'라고 부른 적이 없다. 자신의 욕망 속에서 명명한 '유리에'라고만 부를 뿐. 이름이 도대체 무엇이 중요하냐고 따져 물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동아'의 욕망 속에서 만들어진 '유리에'라는 이름을 부르고 '사랑' 그리고 '영원한 사랑'을 한다고 하는 모습과 감정 속에는 오로지 '동아'만 존재하고 있었다. '유리에'라고 불리는 '영자'의 마음, '영자'의 사랑 따위는 애초에 전~혀 느껴지지 않았던 것이다.
영원한 사랑? 영원한 욕망!
단순히 '동아'가 짝사랑을 했다고 해서, 사랑이 아니라고 말하는 게 아니다. (게다가 내용상 서로 '사랑'한다고 영화가 '주장'하고 있기는 하다.) '동아'가 좋아하는 대상, 그리고 '욕망'하는 대상은 '영자'가 아니라 자신의 환상 속에 있는 '유리에'라는 것. 그리고 자신이 무척이나 사랑하기에 당연히 유리에도 자신을 '사랑'할 것이라는 어디서 많이 본듯한 '남성 판타지'의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영화를 보는 내내 불편했다. 이것은 한 '여성'을 '욕망'하는 이의 환상적인 꿈속 이야기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영화 속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대화'를 하기보다는 자기 안에 있는 욕망을 '지껄였다'에 가까웠고 그러한 '소통불능'의 관계 속에서 '사랑'한다고 주장하는 두 남녀의 모습은 하나도 '사랑스럽지'않았다.
'남성 판타지'적인, 쉽게 말해 '마초'적인 욕망을 바로 드러내는 영화는 그러한 '모습'에 나처럼 불편함을 느끼지 않는 이라면 '사랑' 이야기라고도 생각할 수 있을지도……. '독립영화'라는 프레임 속에서도 '이러한 욕망'이 투영될 수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해준 작품이었다. 내용 혹은 주제에 대해 불편함을 많이 받아서 이러한 글을 썼지만, 영화의 '장면' 하나하나는 굉장히 몽환적이고 동화적인 '정적인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그래서 더욱 '동아'의 '꿈'처럼 느껴졌을지도……. 배경은 아름다웠으나, 내용은 불편했던 영화였다.
감독 : 고은기
주연: 고다미, 강희
제작 국가: 한국
등급 : 18세
상영시간 : 113분
장르 : 드라마
개봉일 : 1월 31일
처음부터 끝까지 '동아'의 판타지로 가득 찬 영화
영화 속에서는 주로 5명의 인물이 나온다. 순수한 소년 '동아' 그리고 동아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사는 동아의 가족과 맞은편에 사는 '몸을 파는 영자'와 그 영자의 포주이자 '아버지'인 산도적. 이상의 5명의 인물 관계 속에서 주로, '동아'의 시점으로 영화 속 이야기는 펼쳐진다. 그리고 처음부터 끝까지 들었던 생각은 "이것은 동아의 환상이 아닐까?"라는 것이었다. 더 직접적으로 말해서, '동아'가 원하는 '사랑의 판타지'를 보여준 것에 불과하다는 것, 결국, 이 영화에는 '사랑'보다는 '동아'의 욕망이 드러낸 이야기 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랑 이야기가 되고 싶은 '남성의 욕망' 이야기랄까. 그래도 나름 '사랑'을 말하고자, 그것도 '영원한 사랑'을 말하고자 하는 영화에 그렇게 심한 말을 할 수 있느냐고 물을 수도 있겠다. 그래서 하나하나 내 생각을 말해보려고 한다.
'유리에'는 오로지 동아의 '욕망' 속에서만 존재했다.
영화 제목에서 나오는 '유리에'라는 것은, 동아가 맞은 편에 사는 '영자'에게 붙여놓은 이름이다. 물론, 자기 마음대로. 영화 속에서 '동아'는 사람들이 '창녀 영자'와 섹스를 할 때마다 각자 자기가 좋아했던 이들, '영자'가 아닌 이들을 부른다고 말하는데, 그와 마찬가지로 '동아'도 영자가 아닌 자신만의 '환상' 속에서 '유리에'를 만들었던 것이다.
'오-! 그것은 돈을 주고 영자의 몸을 산 이들하고는 달리 '순수'하고 '고고'하며 '소년'일 때 하는 생각일 뿐이야!' 맞다. 확실히 '동아'는 돈을 주고 몸을 사고 싶어하지 않았다. 그러나 결국 '동아'의 '순결' 판타지를 (그렇다! 남성 판타지의 근원(?) 혹은 절정(!)이라 할 수 있는 깨끗한 '순결'에의 욕망 말이다.) '욕망'한 것일 뿐. 똑같은 '욕망' 속에 '유리에'라고 명명한 것은 같다고 할 수 있다.
실제로, 분명히 자신의 '이름'은 영자라고 말하는데도 단, 한 번도 '동아'는 '영자'에게 '영자'라고 부른 적이 없다. 자신의 욕망 속에서 명명한 '유리에'라고만 부를 뿐. 이름이 도대체 무엇이 중요하냐고 따져 물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동아'의 욕망 속에서 만들어진 '유리에'라는 이름을 부르고 '사랑' 그리고 '영원한 사랑'을 한다고 하는 모습과 감정 속에는 오로지 '동아'만 존재하고 있었다. '유리에'라고 불리는 '영자'의 마음, '영자'의 사랑 따위는 애초에 전~혀 느껴지지 않았던 것이다.
영원한 사랑? 영원한 욕망!
단순히 '동아'가 짝사랑을 했다고 해서, 사랑이 아니라고 말하는 게 아니다. (게다가 내용상 서로 '사랑'한다고 영화가 '주장'하고 있기는 하다.) '동아'가 좋아하는 대상, 그리고 '욕망'하는 대상은 '영자'가 아니라 자신의 환상 속에 있는 '유리에'라는 것. 그리고 자신이 무척이나 사랑하기에 당연히 유리에도 자신을 '사랑'할 것이라는 어디서 많이 본듯한 '남성 판타지'의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영화를 보는 내내 불편했다. 이것은 한 '여성'을 '욕망'하는 이의 환상적인 꿈속 이야기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영화 속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대화'를 하기보다는 자기 안에 있는 욕망을 '지껄였다'에 가까웠고 그러한 '소통불능'의 관계 속에서 '사랑'한다고 주장하는 두 남녀의 모습은 하나도 '사랑스럽지'않았다.
'남성 판타지'적인, 쉽게 말해 '마초'적인 욕망을 바로 드러내는 영화는 그러한 '모습'에 나처럼 불편함을 느끼지 않는 이라면 '사랑' 이야기라고도 생각할 수 있을지도……. '독립영화'라는 프레임 속에서도 '이러한 욕망'이 투영될 수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해준 작품이었다. 내용 혹은 주제에 대해 불편함을 많이 받아서 이러한 글을 썼지만, 영화의 '장면' 하나하나는 굉장히 몽환적이고 동화적인 '정적인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그래서 더욱 '동아'의 '꿈'처럼 느껴졌을지도……. 배경은 아름다웠으나, 내용은 불편했던 영화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