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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ring

daisy rss
'2008/03'에 해당되는 글 28건
2008/03/31 11:38
노독일처 - 6점
정태춘 지음/실천문학사


가수 정태춘, 시를 쓰다.

 이 시집을 낸 사람은 가수, 정태춘 씨야. 사실, 나는 그에 대해 잘은 몰라. 그가 포크가수라는 것, '시인의 마을'이라는 노래와 '아 대한민국'이라는 노래를 불렀다는 것을 아는 정도지. 게다가 난 그 노래를 들어본 적도 거의 없어. 다만, 그가 민중가요 같은 노래를 불렀고, 그렇기에 그 노래에 담긴 생각과 감성이 시에도 고스란히 담겨 있지 않을까 추측할 뿐이었지. 가수 정태춘, 그는 어떤 시를 썼을까?

세상을 보는 날카로운 눈

 역시, '아 대한민국'의 노래를 불렀던 정태춘 씨 답게, 세상을 날이 선 채로 바라보고 있었지. 시집 속 시에서 제목 위에 조그맣게 쓰여있는 '권력 1' 혹은 '권력 2'가 쓰여있는 권력 시리즈는 세상을 보는 그의 시선을 알 수 있어. 소수 권력자에 의해 많은 이들이 고통받는 세상을 바라보는 그의 눈빛. 게다가 시는 '날 것' 그대로 쓰였어. 어떤 기교를 쓰기보단, 솔직하게 자신의 마음을 적어 내렸다고나 할까. 그렇기에 시를 읽기가 불편할 수도 있지. 하지만, 그 '날카로운 시선'에 담긴 마음은 분노만이 아니야. 슬픔이, 고통받는 민중에 대한 연민이 느껴져. 마치, '왜 그렇게 세상은 사람들을 못되게 구는 걸까?' 라는 말을 하는 것처럼. 이렇듯 현실을 날카롭게 풍자한 시에는 세상에 대한 분노와 민중에 대한 연민이 공존하지. 그런데 이게 전부일까? 그렇지 않아.

외로운 나그네의 삶

 세상을 날카롭게 본다는 것, 세상과 불화하면서 산다는 것은 결코 편한 삶이 아니지. 분노하며 싸우는 것도, 연민을 가지고 슬퍼하는 것도 힘든 일이야. 그렇게 오랫동안 살아오면서 때로는 쉬고 싶고, 종종 자신이 홀로인듯한 외로움도 느끼겠지. 그 마음 또한 이 시집에 담겨있어. 여전히 추악한 세상에 대해서 자신에 대해 무력감을 느끼기도 하고(허무하단 말야), 함께했던 많은 이들에게서 상처를 받기도 하지(악수). 언제나 '날카로운 모습'만을 볼 줄 알았던 나는 그 모습이 인상에 깊게 남았어. '인간 정태춘' 씨를 만나본 느낌이랄까.

꿈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가다.

 지치고 외로운 나그네의 삶. 그럼에도, 정태춘 씨는 자신의 꿈을 향해 의연히 걸어갈 거라고 다짐해. 이 시집의 제목으로 쓰인 '노독일처'라는 시를 보면, '노독일처'라는 중국집에서 자신의 꿈, 이상향을 발견하고 앞으로 그것을 보려고 계속 오겠노라고 자신에게 말하지. 그동안 싸워왔던 이유인 자신의 꿈. 그곳으로 가는 길이 때로는 지치고 때로는 외롭더라도 그는 걸어갈 거야. 그러면서 또 세상에 대해 분노를 터뜨리고 민중이 받는 고통에 대해 슬퍼하겠지. 언젠가는 그러한 모습이 사라질 세상을 위해서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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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3/27 21:34


가장 어두운 밤의 위로
                          sweetpea


얼마나 더 오랫동안 고민을 해야 하는 걸까

아무런 생각도 없이 지내왔던 허무한 날들이
누군가 날 위해 울어주기는 하는걸까
오 내가 사라지면 그 아무 것도 아닌 일들

슬픔은 날 가로질러 저 멀리 또 흘러가는데
허무했던 숱한 밤을 지나서
또 다시 돌아오는 공허한 공기들
태양이 뜨기 전이 가장 어둡다고 하지
기회는 언제고 반드시 찾아온다 하지만

낯설은 냄비 속에 든 시뻘건 바닷가재마냥
물이 뜨겁게 끓어오르기만을 기다리는
그런 기구한 운명
그건 나야 바로 나야 아무리 도망치려 해도
또 나야 역시 나야 발버둥을 쳐보아도

내겐 사랑이란 게 이리도 힘들기만 한건지
뭐가 잘못된 건지 알 순 없어
아무리 생각하고 고민해 봐도
운명의 시간은 점점 나를 조여오고
널 도와줄 구해줄 사람은 아무도 없어



* 조용한 곳,
  그 누구도 내 마음을 불편하게 하지 않는 곳에서
  이 노래를 들었다.
 
  …….

  좋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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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가던준영이란아이 | 2008/03/29 00:27 | PERMALINK | EDIT/DEL | REPLY
노래 좀 신비러워요 주인장님 ㅋㅋ
BlogIcon 여울바람 | 2008/03/29 00:29 | PERMALINK | EDIT/DEL
가사를 음미해도 좋아.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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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3/27 20:57
타인을 만나는 시간만큼,

자신을 만나는 시간이 필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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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3/27 20:37
알아,

더는 믿지 않는다는 것을…….



하지만,

믿고 싶은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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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3/26 00:09


적나라한 욕망, 상품사회의 등장

- 알기 쉬운 정치경제학, 제 2장 상품에 대한 끄적거림


욕망은 상품을 부르고, 상품은 또 다른 욕망을 부른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반드시 존재하는 ‘상품’은 돈으로 구매가 가능한, 다시 말해 돈을 매개로 교환을 하는 재화와 서비스를 말하지. 사회가 자본주의 사회로 넘어오게 되면서 각종 서비스와 재화는 상품으로 변했어. 음식과 빨래 등의 가사노동에서부터 깨끗한 공기까지. 그런데, 우리는 흔히 이러한 상품이 사람들의 욕망에 의해서 등장한다고 생각해. 정말 모든 상품이 우리의 ‘욕망’에 의해서 탄생한 것일까?


 지금 우리 주위에 있는 것을 한 번 둘러봐, 디지털 카메라, MP3, 컴퓨터, 텔레비전…. 이것들이 상품으로 등장하기 전에 우리가 미리 ‘욕망’하고 있었을까? 그렇지 않지. 계속해서 등장하는 상품은 이미 있던 재화와 서비스를 ‘상품화’할 뿐만 아니라, 새로운 욕망을 만들어내기도 해. 욕망이 상품을 불렀다면, 그 상품이 또 다른 욕망을 부르게 되는 셈이지.


교환이 아니면 살아갈 수 없는 존재, 임금노동자


  이렇게 상품이 많아지면서 상품을 거래하는 시장은 점점 더 커지지. 하지만, 결정적으로 시장을 키운 것은 바로, ‘임금 노동자’의 등장이야. 노동력을 팔아서 임금으로 살아가는 임금 노동자는 과거에 농촌사회에서 자급자족했던 모든 것을 ‘교환’을 통해 구해야 했거든. 예전에는 직접 농사지었던 모든 곡물과 채소부터, 집에서 짰던 옷까지 모든 걸 상품으로 구매하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었어. 이렇게 생활의 모든 걸 시장을 통한 상품교환에 의지하다보니, 시장은 커질 수밖에 없었던 거야. 그리고 임금 노동자의 처지는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이기도 하지. 우리도 ‘돈’을 매개로한 교환 없이는 살아가기 힘든 구조 속에 있잖아?


모든 걸 상품화하라, 다양한 상풍시장의 탄생

  모든 것을 상품화시키는 자본주의 사회이기에 상품은 많을 뿐만 아니라 다양해졌어. 노동시장, 토지시장, 화폐시장, 자본시장 등등…. 물론, 모든 상품시장이 똑같은 건 아니지. 노동시장의 경우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듯이 ‘구매’한 상품을 절대적으로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건 아니야. 노예구매가 아닌 이상, 노동자의 노동력을 빌린 것이기에 노동력을 과도하게 짜내면 노동력의 본래 주인인 노동자의 반발이 있을 수 있지. 그렇기에 노동시장의 경우는 상품교환이 이루어질 때 좀 더 세밀한 조정이 필요해. 게다가 노동 시장 뿐만 아니라 다른 상품시장도 상품을 구매했다고 해서, 구매한 이가 모든 걸 마음대로 한다면 사회적 비용이 만만찮게 들어. 그렇기에 모든 상품시장에는 적절한 사회적 규제가 필요해. 물론, 한국은 절대적으로 구매한 이의 권리만을 우선시하기에, 다른 상품시장은 기본이고 노동시장까지 마음대로 하게 내버려둬서, 각종 사회적 비용이 문제가 되고 있지. 또 다른 시장 자본시장(혹은 증권시장)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중요한 시장이야. 회임기간이 긴 대규모 사업들에 필요한 자본을 구할 수 있게 해서 철도나 조선 같은 대형 산업의 발전을 가져왔지. 이렇게 자본주의 사회는 많은 걸 상품으로 만들었고 다양한 상품시장을 등장시켰으며 그 시장들이 다시 자본주의 사회를 더욱 가동시켰어. 그게 좋은 쪽인지 나쁜 쪽인지는 모르겠지만…….


상품 없는 사회 그리고 욕망이 계획된 사회?


  모든 걸 자급자족했던 사회에서는 상품은 존재하지 않았어. 그렇다면 하나의 커다란 경제를 자급자족시스템으로 바뀌면 상품이 없는 사회는 존재하지 않을 수 있을까? 『알기 쉬운 정치경제학』에서 김수행 교수는 ‘새로운 사회’에서는 상품이 존재하지 않을 수 있다고 믿어. 예컨대 커다란 경제를 한 국가 내에서 모든 것을 내부화시켜서 거대한 자급자족시스템을 만들면 되지 않느냐는 거지. 그런데 위에서 봤듯이 상품은 욕망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어. 욕망이 상품을 만들기도, 상품이 욕망을 만들기도 하지. 만약, 상품이 없는 사회라면 그에 따른 욕망도 적절히 통제하고 또한 계획된 욕망만을 개인이 받아들여야만 한다는 것인데……. 그런 게 가능할까? 욕망을 통제하고, 필요한 욕망만을 가지는 수많은 개인들, 공동체들이 나타날 수 있을까?


함부로 욕망에 팔 수 없는 것.


  위에 말한 것처럼 모든 상품을 통제하고 욕망을 계획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최소한 욕망에 팔아넘겨서는 안 되는 것은 존재하지. 상품시장에서 상품을 구매했다고 절대적인 권리를 갖게 되면 엄청난 사회적 비용이 들어가게 되듯이, 상품으로 만들었을 때 사회적 비용이 큰 서비스와 재화도 분명히 존재하지. 몇몇 선진국의 경우는 의료와 교육을 실질적으로 국가가 통제함으로써 상품으로 존재할 수 없게 만들었어. 의료와 교육은 상품으로 놔두면 커다란 비용이 발생할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겠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모든 것이 상품으로 변해. 하지만, 상품화된 서비스와 재화를 시장에서 교환하는 것만이 항상 좋은 것은 아니야. 우리는 상품으로 되는 것을 막아야만 하는, 욕망에 팔아넘길 수 없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개인의 욕망이 아닌 모두의 욕망을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그것이, 적나라하게 욕망이 드러나는 상품사회에서 사람으로서 살아가기 위한 하나의 방법일 테니까.



P.S

1.이것은 학교 과제다.-_-;
(구체적으론, 알기 쉬운 정치경제학 제 2장을 읽고 글 쓰는 것.)
2. 단지, 교수님만을 읽는 글을 쓴다면, 글쓰는 재미가 뚝뚝 떨어진다.
3. 그래서, 내가 선택한 방법은 내 블로그에 올리기. 누가 읽을 수 있는 '기회'는 주어지니까.
4. 부디, 배끼는 레포트(로 쓸 사람도 없겠지만--; 혹시..)로 이용당하지 않기만을 바랄뿐.
5. 글쓰고보니 내용요약에 더 가까워졌다. 좀더 생각을 해보고 나만의 사고와 논리를 담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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찌질이미대생 | 2008/03/26 17:35 | PERMALINK | EDIT/DEL | REPLY
사회가 발달하고 커지면서 자급자족은 아득한 먼나라 이야기가 되버렸지, 뭐 그렇다고 편하다는 이유만으로 이것저것 다 상품으로 만들어서 팔아먹는 개념을 유화물감에 말아먹은 행동은 해서 안되겠지 ㅋㅋ
BlogIcon 여울바람 | 2008/03/26 23:57 | PERMALINK | EDIT/DEL
요즘엔 자급자족이 꼭 좋은 것만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음...'상품화'가 아무런 문제제기없이 가장 막나가는 진정으로 '자본주의'에 가까운 나라. 한국.-_-;
찌질이미대생 | 2008/03/27 19:42 | PERMALINK | EDIT/DEL | REPLY
우리나라가 제일 막장인 건 아니지. 옆 섬나라 애들도 저쪽 쌀나라 애들도 있는데. 우리나라는 아직은 괜찮은 편이야.
BlogIcon 여울바람 | 2008/03/27 20:31 | PERMALINK | EDIT/DEL
쌀나라 애들은 적어도 '자본주의' 틀을 확고히 지켜나가는 게 있어. 예를 들어 독과점이나 각종 불법회계. 쉽게 말해 S모기업 같이 군림할 수는 없지. 그러나 우리나라는....
자본주의만도 못한 막장 자본주의랄까.-_-;
BlogIcon 무스탕소년 | 2008/03/29 22:12 | PERMALINK | EDIT/DEL | REPLY
신영복 선생님은
이 상품사회 그리고 자본주의가 최종적으로 인간을 상품화 시킨다고 말씀하시더군.
인간의 특성을 전문화 시킨다는 것도 결국에는 상품화가 될 수 밖에 없을 것 같애.
자본주의에서 모든 것이 상품으로 변한다면 결국에는 인간도 상품으로 취급되지 않을까.

나중에 수업한번 들어봐. 여러모로 생각할 것들을 던져주는 수업이야.
답을 늦게 주셔서 고민하는 수업이기도 하지만. ㅋ
BlogIcon 여울바람 | 2008/03/29 23:48 | PERMALINK | EDIT/DEL
「자본주의 이해」시간에서는 자본주의가 '인간의 몸'을 팔 수 있게 되면서(즉, 상품이 되면서) 시작되었다고 해. '자본주의가 모든 것을 상품으로 바꾼다'지만 그렇다면 인간의 '존엄성' 그리고 생명의 '소중함'을 이야기가 무의미해지겠지. 그러한 이야기 속에서 적어도 상품이 되면 안되는 것에 대한 강한 '공동적 의식'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어. 자본주의가 발달한 유럽에서도 우리나라만큼 '사람이 상품화'되어 있지 않거든. 그게 단순히 착한자본주의인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그것을 '요구'하고 그렇게 '의식'하기 때문에 함부로 못하는 거라고 생각해. '경제'도 '정치'니까.
즉, 한국도 분명히 인간은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만들 수 있다는 거쥐.

음..
신영복쌤,
일단, 책에서 먼저 뵙고 수업 들을지 고민하겠어.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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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3/25 02:42
나는 '나'에게

'관심'을 주지 않는다고

'투정'부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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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3/25 00:48
말하고 싶은데
그저 솔직해지고 싶은 것일 뿐인데

들어주지 않는다고
날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울음을 숨기려 짜증을 내고
미움이 두려워 침묵을 했네

나에 대해서 들어줬으면 한 것뿐인데
그게 그렇게 외로운 것일 줄이야….





그 모든 게,
점점 익숙해지는
내가
싫어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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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3/24 23:23
사랑니를 뺀 지 얼마나 되었다고,

반대쪽 사랑니에서 피가 난다.

아직도,

뽑아내야 할 게 남아있다는 걸까.


아프고 불편한 건,

여전하다.





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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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3/24 09:27
백화점이 즐거운 이유는

수많은 감정노동을 '즐기기' 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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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3/19 19:19

그녀와의 첫 만남


 사실, 그녀와의 첫 만남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마치, 서로에게 익숙해져 어느새 연인이 되어버리는 것처럼, 그녀 또한 어느새 나와 함께 하고 있었다. 지금 기억나진 않지만, 내가 유치원에 다닐 때쯤은 분명 그녀는 나와 함께 있었고, 본격적으로 그녀와 교제하기 시작할 때는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나서였다. 그리고 내가 중학교에 갈 때는 물론이고,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나서도 드문드문이나마 그녀를 만났다. 그러나 결국, 대학교에 입학할 쯤에는 그녀와 헤어지게 되었고. 그 이후로는 ‘연인’ 아닌 ‘서먹한 친구’정도의 관계만을 유지하고 있다. 부모님을 제외하고 가장 오래 만났던 그녀, 이건 나와 그녀와의 관계를 되돌아보는 글이다. 그녀의 이름은 텔레비전이다.


밥, 대화, 그녀


 그녀를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바로 ‘밥’이다. 단언컨대, 내 삶에서 가장 많이 밥을 함께 먹은 이는 그녀일 것이다. 그녀는 갖은 이야기를 너무도 맛깔나게 했는데, 그러한 이야기가 내가 밥을 맛있게 먹는 반찬이 되었던 것이다. 혼자 먹을 때든, 가족과 함께 먹을 때든, 그녀가 없으면 항상 먹던 반찬이 없던 것처럼 심심했다. 아, 물론 나만 그녀의 이야기를 좋아했던 것은 아니다. 나의 부모님도 그녀의 매혹적인 이야기에 푹 빠지셨으니까. 그래서 우리 가족의 식사시간에는 항상, 그녀의 이야기만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마치, 대화라는 것이 그녀의 이야기만을 듣는 것처럼 말이다.

 또 그 대화는 단순히 내 가족에게만 해당하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명절 그리고 여러 이유로 친척들과 함께 할 때도 어느새 우리 모두 그녀의 이야기에 집중하고 있었다. 멀리 떨어진, 자주 만나지 못하는 친척들과의 대화의 주제는 항상 ‘그녀의 이야기’였다. 그랬다. 그때 대화라는 것은 그녀의 야야기에 집중하거나, 그녀의 이야기에 대해 한마디씩 덧붙이는 것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별 거 아닌 것 같지만 그때는 그게 그토록 즐거웠다.


그녀의 생각은 곧, 나의 생각이요!


 그녀의 이야기가 항상 가볍기만 한 것은 아니다. 그녀는 때로 진지한 이야기를 할 때도 있었다. 토요일에는 “역사스페셜”이라는 제목으로 역사에 대해 알려주고, 일요일마다 말하는 “일요스페셜”은 내가 살고 있는 사회에 대해 말했다. 내가 초등학교 고학년 혹은 중학교 때부터 그녀가 말하는 이러한 이야기가 재미있게 들렸다. 당시, 나는 위의 두 개의 이야기 말고도 각 날마다 그녀가 진지한 이야기를 할 때가 있었는데 그때를 놓치지 않고 잘 들었던 기억이 난다. 그녀는 역사에 대해 역사 선생님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재미있게 말했으며, 사회에 대해 약간은 흥분하면서 비판하였다. 그러면, 역시 나도 모르게 흥분이 되고 함께 비판을 하였다. 그때는 마치, 내가 그녀의 ‘진지한 이야기’를 들으면, 나도 그렇게 진지해지거나, 정의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된다는 믿음이 있었다. 그랬기 때문에 부모님이 그녀가 다른 이야기를(대개는 다른 가족들에 대한 이야기다.)하려고 할 때 거침없이, ‘진지한 이야기’가 듣고 싶다고 말했다.

 그런데 지금 돌아보면,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난 정말 진지해지거나 정의롭게 변했는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 그녀의 진지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내’가 생각을 한다고 믿어왔지만, 그게 아니라 ‘그녀’가 대신 생각해주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고등학교를 들어갈 즈음, 그녀의 분노가 담긴 이야기를 듣고 나면나도 그에 대해서 커뮤니티 사이트에 글을 쓰곤 했는데, 사실 그건 ‘그녀’의 이야기를 그대로 쓴 것에 불과했을지도 모르겠다.


나의 상담사, 그녀


 난 어렸을 적엔 종종 우울했었는데, 그때는 그녀의 이야기가 특효약이었다. 위에서도 말했다시피, 그녀의 이야기는 정말 매혹적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녀의 이야기 중에서 ‘만화’를 가장 즐거워했지만, 사실, 우울할 때는 어떠한 이야기를 들어도 위로가 되었다. 어쩌면 나는 그녀의 재밌는 이야기를 듣고 싶었던 게 아니라, 그저 그녀가 이야기하는 것을 아무 생각 없이 듣고 싶었던 게 아닐까?

 그런데, 조금 이상한 점이 있었다. 그녀의 “이야기 위로”를 받은 후에는 분명 우울한 감정은 사라지는데, 동시에 어떤 다른 ‘감정’도 생기지 않았다. 말 그대로 감정이 무뎌져가고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그녀와 단 둘이 이야기 할 때는 내 얼굴에 어떠한 표정변화도 없었다. 그저 눈만 퀭하니 뜬 채 그녀의 이야기에만 몰입했다. 어쨌든, 그녀는 나의 우울한 감정을 가져가버리는 탁월한 상담사였다.


그녀와 갑작스런 이별, 그리고 지금 나의 모습


 이렇게 내 삶에서 떼어놓을 수 없는 그녀와 이별은 갑작스럽게 찾아왔다. 대학교에 입학하게 되면서, 내가 사는 곳이 바뀌었는데, 그곳에는 그녀가 올 수 없는 곳이었다. 결국, 그녀와 따로 떨어져 살게 되었던 것이다. “눈에서 보이지 않으면, 마음에서 사라진다.”라는 말이 있듯이, 그녀가 보이지 않게 되자 서서히 그녀가 잊혀졌다. 그리고 어느새 우리는 헤어진 오래된 연인이 되었다.

 이제 나는 ‘그녀의 맛깔난 이야기 반찬’ 없이도 밥을 먹을 수 있게 되었으며, 그녀가 진지한 생각들을 들려주지 않더라도 스스로 생각해보게 되었고, 내가 어떤 감정을 지니고 있는지 느껴보기도 하고, 우울할 땐, 다른 방식으로 풀어내는 방법을 궁리해본다. 이게 그녀와의 이별 후 나에게 나타난 변화이다. 물론, 그녀와 아예 만나지 않는 건 아니다. 인기 많은 그녀의 이야기는 다른 사람을 통해 들려지기도 하고, 내가 사는 곳이 아닌 곳에 가면 그녀를 쉽게 만날 수 있다. 그렇지만 이제 더는 예전처럼 많은 관심을 그녀에게 주지 않는다. 그녀의 이야기로 재미있게 말하는 이들이 가끔 그녀에 대한 감정을 건드리지만, 나는 그녀가 떠나간 내 삶과 모습이 마음에 든다. 앞으로도 쭉 이렇게 살아갈 것이다. 지금까지, 나의 가장 오래된 연인 “텔레비전”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런데……. 요즘 들어 어느새 푹 빠져버린 새로운 그녀가 나타났다. 그녀의 이름은 “인터넷”이다.



P.S 이 글은 '텔레비전과 나'라는 주제로 쓴 에세이 과제이다.-_-; 왠지 뻔-한 내용이 예상되기에, 좀 더 재미있는 방식으로 글을 써보고자 그녀로 의인화해서 써보았다. 그.런.데. 아마도 교수님은 '개인적' 경험을 통해 '역사적' 모습을 보는 것을 '의도'했나 보다. 고로, 이걸 과연 재밌게 읽으실지는 모르겠다.

아놔…….- _-

정해진 과제에는 실험정신 따윈 좋지 않다.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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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ogIcon 루인 | 2008/03/20 10:16 | PERMALINK | EDIT/DEL | REPLY
정해진 과제에 실험정신은 안 좋아도, 글은 재밌어요.
맛깔스런 느낌의 글이랄까요. 헤헤
BlogIcon 여울바람 | 2008/03/21 13:03 | PERMALINK | EDIT/DEL
고마워요.ㅠ-ㅠ
BlogIcon sigmund | 2008/03/20 17:54 | PERMALINK | EDIT/DEL | REPLY
순간 긴장했뜸....ㄷㄷㄷ
BlogIcon 여울바람 | 2008/03/21 13:03 | PERMALINK | EDIT/DEL
네가 왜 긴장을 해?-_-ㅋ
찌질이미대생 | 2008/03/23 03:53 | PERMALINK | EDIT/DEL | REPLY
ㅋㅋㅋㅋㅋㅋ 슬프다. 기숙사에는 텔레비젼을 못들여놓지
BlogIcon 여울바람 | 2008/03/23 21:49 | PERMALINK | EDIT/DEL
자취방에도 없..
BlogIcon 희깅 | 2008/03/23 15:12 | PERMALINK | EDIT/DEL | REPLY
완전 재밌게 읽었음. ㅎㅎ
BlogIcon 여울바람 | 2008/03/23 21:49 | PERMALINK | EDIT/DEL
...쌤도 같은 마음이면 얼마나 좋을까요?ㅋㅋ
BlogIcon 나놔 | 2008/03/24 17:22 | PERMALINK | EDIT/DEL | REPLY
ㅎㅎㅎ 저도 대학오면서 그녀랑 헤어졌었는데.
자취하면서 옮긴 원룸에 그녀가 벽에 걸려 있었다는...-_-
아 보기 싫은데. 계속 습관적으로 전원에 손이 가요ㅠ
BlogIcon 여울바람 | 2008/03/24 23:24 | PERMALINK | EDIT/DEL
그녀의 맛깔난 이야기는
'습관'이자 '중독'이죠.ㅎㅎ
| 2008/03/27 15:36 | PERMALINK | EDIT/DEL | REPLY
비밀댓글 입니다
BlogIcon 여울바람 | 2008/03/27 18:28 | PERMALINK | EDIT/DEL
아,
그렇게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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