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와의 첫 만남
사실, 그녀와의 첫 만남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마치, 서로에게 익숙해져 어느새 연인이 되어버리는 것처럼, 그녀 또한 어느새 나와
함께 하고 있었다. 지금 기억나진 않지만, 내가 유치원에 다닐 때쯤은 분명 그녀는 나와 함께 있었고, 본격적으로 그녀와 교제하기
시작할 때는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나서였다. 그리고 내가 중학교에 갈 때는 물론이고,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나서도 드문드문이나마
그녀를 만났다. 그러나 결국, 대학교에 입학할 쯤에는 그녀와 헤어지게 되었고. 그 이후로는 ‘연인’ 아닌 ‘서먹한 친구’정도의
관계만을 유지하고 있다. 부모님을 제외하고 가장 오래 만났던 그녀, 이건 나와 그녀와의 관계를 되돌아보는 글이다. 그녀의 이름은
텔레비전이다.
밥, 대화, 그녀
그녀를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바로 ‘밥’이다. 단언컨대, 내 삶에서 가장 많이 밥을 함께 먹은 이는 그녀일 것이다.
그녀는 갖은 이야기를 너무도 맛깔나게 했는데, 그러한 이야기가 내가 밥을 맛있게 먹는 반찬이 되었던 것이다. 혼자 먹을 때든,
가족과 함께 먹을 때든, 그녀가 없으면 항상 먹던 반찬이 없던 것처럼 심심했다. 아, 물론 나만 그녀의 이야기를 좋아했던 것은
아니다. 나의 부모님도 그녀의 매혹적인 이야기에 푹 빠지셨으니까. 그래서 우리 가족의 식사시간에는 항상, 그녀의 이야기만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마치, 대화라는 것이 그녀의 이야기만을 듣는 것처럼 말이다.
또 그 대화는 단순히 내 가족에게만 해당하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명절 그리고 여러 이유로 친척들과 함께 할 때도 어느새 우리 모두 그녀의 이야기에 집중하고 있었다. 멀리 떨어진, 자주 만나지 못하는 친척들과의 대화의 주제는 항상 ‘그녀의 이야기’였다. 그랬다. 그때 대화라는 것은 그녀의 야야기에 집중하거나, 그녀의 이야기에 대해 한마디씩 덧붙이는 것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별 거 아닌 것 같지만 그때는 그게 그토록 즐거웠다.
그녀의 생각은 곧, 나의 생각이요!
그녀의 이야기가 항상 가볍기만 한 것은 아니다. 그녀는 때로 진지한 이야기를 할 때도 있었다. 토요일에는 “역사스페셜”이라는
제목으로 역사에 대해 알려주고, 일요일마다 말하는 “일요스페셜”은 내가 살고 있는 사회에 대해 말했다. 내가 초등학교 고학년
혹은 중학교 때부터 그녀가 말하는 이러한 이야기가 재미있게 들렸다. 당시, 나는 위의 두 개의 이야기 말고도 각 날마다 그녀가
진지한 이야기를 할 때가 있었는데 그때를 놓치지 않고 잘 들었던 기억이 난다. 그녀는 역사에 대해 역사 선생님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재미있게 말했으며, 사회에 대해 약간은 흥분하면서 비판하였다. 그러면, 역시 나도 모르게 흥분이 되고 함께 비판을
하였다. 그때는 마치, 내가 그녀의 ‘진지한 이야기’를 들으면, 나도 그렇게 진지해지거나, 정의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된다는
믿음이 있었다. 그랬기 때문에 부모님이 그녀가 다른 이야기를(대개는 다른 가족들에 대한 이야기다.)하려고 할 때 거침없이,
‘진지한 이야기’가 듣고 싶다고 말했다.
그런데 지금 돌아보면,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난 정말 진지해지거나 정의롭게 변했는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 그녀의 진지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내’가 생각을 한다고 믿어왔지만, 그게 아니라 ‘그녀’가 대신 생각해주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고등학교를 들어갈 즈음, 그녀의 분노가 담긴 이야기를 듣고 나면나도 그에 대해서 커뮤니티 사이트에 글을 쓰곤 했는데, 사실 그건 ‘그녀’의 이야기를 그대로 쓴 것에 불과했을지도 모르겠다.
나의 상담사, 그녀
난
어렸을 적엔 종종 우울했었는데, 그때는 그녀의 이야기가 특효약이었다. 위에서도 말했다시피, 그녀의 이야기는 정말 매혹적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녀의 이야기 중에서 ‘만화’를 가장 즐거워했지만, 사실, 우울할 때는 어떠한 이야기를 들어도 위로가 되었다.
어쩌면 나는 그녀의 재밌는 이야기를 듣고 싶었던 게 아니라, 그저 그녀가 이야기하는 것을 아무 생각 없이 듣고 싶었던 게 아닐까?
그런데, 조금 이상한 점이 있었다. 그녀의 “이야기 위로”를 받은 후에는 분명 우울한 감정은 사라지는데, 동시에 어떤 다른 ‘감정’도 생기지 않았다. 말 그대로 감정이 무뎌져가고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그녀와 단 둘이 이야기 할 때는 내 얼굴에 어떠한 표정변화도 없었다. 그저 눈만 퀭하니 뜬 채 그녀의 이야기에만 몰입했다. 어쨌든, 그녀는 나의 우울한 감정을 가져가버리는 탁월한 상담사였다.
그녀와 갑작스런 이별, 그리고 지금 나의 모습
이렇게 내 삶에서 떼어놓을 수 없는 그녀와 이별은 갑작스럽게 찾아왔다. 대학교에 입학하게 되면서, 내가 사는 곳이 바뀌었는데, 그곳에는 그녀가 올 수 없는 곳이었다. 결국, 그녀와 따로 떨어져 살게 되었던 것이다. “눈에서 보이지 않으면, 마음에서 사라진다.”라는 말이 있듯이, 그녀가 보이지 않게 되자 서서히 그녀가 잊혀졌다. 그리고 어느새 우리는 헤어진 오래된 연인이 되었다.
이제 나는 ‘그녀의 맛깔난 이야기 반찬’ 없이도 밥을 먹을 수 있게 되었으며, 그녀가 진지한 생각들을 들려주지 않더라도 스스로 생각해보게 되었고, 내가 어떤 감정을 지니고 있는지 느껴보기도 하고, 우울할 땐, 다른 방식으로 풀어내는 방법을 궁리해본다. 이게 그녀와의 이별 후 나에게 나타난 변화이다. 물론, 그녀와 아예 만나지 않는 건 아니다. 인기 많은 그녀의 이야기는 다른 사람을 통해 들려지기도 하고, 내가 사는 곳이 아닌 곳에 가면 그녀를 쉽게 만날 수 있다. 그렇지만 이제 더는 예전처럼 많은 관심을 그녀에게 주지 않는다. 그녀의 이야기로 재미있게 말하는 이들이 가끔 그녀에 대한 감정을 건드리지만, 나는 그녀가 떠나간 내 삶과 모습이 마음에 든다. 앞으로도 쭉 이렇게 살아갈 것이다. 지금까지, 나의 가장 오래된 연인 “텔레비전”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런데……. 요즘 들어 어느새 푹 빠져버린 새로운 그녀가 나타났다. 그녀의 이름은 “인터넷”이다.
P.S 이 글은 '텔레비전과 나'라는 주제로 쓴 에세이 과제이다.-_-; 왠지 뻔-한 내용이 예상되기에, 좀 더 재미있는 방식으로 글을 써보고자 그녀로 의인화해서 써보았다. 그.런.데. 아마도 교수님은 '개인적' 경험을 통해 '역사적' 모습을 보는 것을 '의도'했나 보다. 고로, 이걸 과연 재밌게 읽으실지는 모르겠다.
아놔…….- _-
정해진 과제에는 실험정신 따윈 좋지 않다.ㅠ-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