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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7'에 해당되는 글 55건
2008/07/31 21:51
원래, 나는

혼자라는 것을

즐길 줄 아는

녀석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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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7/31 21:40
아이, 로봇 - 6점
아이작 아시모프 지음, 김옥수 옮김/우리교육


신화 속에 있는 '지금 여기의 우리'

 신화를 읽어보적 있어? 요즘 사람들은 다 아는 그리스 로마 신화 부터, 북유럽 신화 그리고 한국의 많은 신화까지…. 신화는 보통 지금과는 멀리 떨어진 과거에 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어. 표면적으로는 완전 '안드로메다 성운'의 이야기라는 거지. 그런데도 지금까지도 많은 이들이 듣거나 읽고 있어.

 왜 그럴까? 그건, 신화 속에 '지금 여기의 우리'가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 신화 속에 나오는 수 많은 신과 거인 그리고 요정의 이야기가 흥미로운 이유는 바로, '우리'의 이야기이기 때문이야. 이것은 마치, 유행가 속에서 우리 사연을 상상하는 것과 같은 이치랄까.


창조자 인간, 창조물 로봇
그들의 새로운 신화

 뜸금없이 웬 신화 이야기냐고? 그건, 내가 『아이, 로봇』을 읽으면서 '새로운 신화'를 읽는 기분이였기 때문이야. 『아이, 로봇』은 그저 미래에 로봇을 등장시킨 평범한 소설이 아니였어. 각각의 로봇에 대한 '에피소드'형식이 엮어진 책은 마치 예전에 내가 읽었던 그리스 로마 신화 라던지 북유럽 신화를 떠올리게 했지. 차이가 있다면 창조자가 인간이고 창조물이 로봇이라는 차이 일뿐이야.

 아이작 아시모프는 로봇을 단순히 '기계'를 넘어서서 '창조물'로 봤어. 우리가 숱한 신화에서 등장한 '인간'처럼 말이야. 신이 인간을 창조하였지만, 인간이 그저 '만들어진 인형'이 아니었듯 『아이, 로봇』에 나오는 로봇들은 하나같이 '인형'이 아닌 '톡톡 튀는 창조물'로서 존재하고 있어. 신을 우습게 보는 인간처럼 인간을 열등한 존재로 생각하기도 하고, 신을 속이는 인간처럼 인간을 속이는 로봇도 있지. 인간에게서만 보았던 모습을 우리가 만든 '로봇'에서 보고, 그 모습에 신이 인간에게 당황했던 것처럼 인간이 로봇에 애를 먹는 모습은 흥미롭기도 하고, 오싹하기도 해.


로봇을 위한? 인간을 위한!
미래의 신화 『아이, 로봇』

 그러한 모습을 계속 읽고 있노라니, 마치 로봇의 신화를 읽고 있는 듯한 느낌마저 들어. 먼훗날, 『아이, 로봇』을 읽고 로봇이 자신의 머나먼 과거 이야기를 생각하지 않을까? -.-? 뭐, 그건 로봇에게 맡기고 나는 '인간'으로써 이야기 해보겠어. 내가 아까 위에서 마치 로봇이 신화 속 '인간'의 역활을 한다고 했지? 그렇다는 말은 로봇 이야기 속에서 결국, '지금 여기에 있는 우리'를 볼 수 있다는 거지.

 그 뿐만이 아니야. 『아이, 로봇』속에서 로봇을 우리의 한 단면으로 본다면 그것을 상대하는 '인간' 또한 우리의 한 단면이지. 결국, 소설을 읽으면서 각각 다른 쌍방의 우리를 마주보게 되. 그것은 '신과 인간'의 신화보다도 직접적으로 '인간'에 대해서 돌아보게 만든다는 거야. 즉, 정말 '재미'있으면서 매우 '뜨끔'한 이야기라는 거지. 어쩌면 어쩌면 말이야……. 인간들의 세상인 '지금 여기'에서도 누군가는 '창조자'의 위치에 있고, 누군가는 '창조물'의 위치에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어쩌면, 이 소설 속에서 등장하는 로봇에 대한 당신의 태도가 그 답을 대신할 지도 모르지……. 여태까지의 창조물로서의 관점이 아닌, 창조자로서의 우리를 돌아보게 만드는 멋진 미래의 신화. 그게, 『아이, 로봇』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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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7/31 2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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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릭 Brick, 2005
감독 : 리안 존슨
주연 : 조셉 고든 레빗, 노라 제헤트너
상영시간 : 110분
장르 : 드라마, 미스터리
개봉일 : 2008.01.31











탐정은 영웅이고, 영웅은 정의일까?

 브릭(Brick)은 추리물이다. 그것도 10대 추리물. 영화 속 주인공은 '브랜든'은 예전에 사귀었던 여자친구의 구조 요청을 받고 하나 하나 '영화의 핵심 사건'에 대해 추리해나간다. 오, 이제 안봐도 비디오야! 그렇지? 어쨋든 '브랜든'은 옳은 일을 하기 위해 힘차게 달려나갈 것이며, 그의 뛰어난 추리력으로 '범인'을 잡아서 '사건'을 해결할 것이다. 그렇게 '사건'을 해결한 우리의 주인공 브랜든은 오늘도(?) 세상의 정의를 지켰노라. 하고 끝나겠지. 마치, 모 추리만화의 뻔하고 뻔한 패턴처럼. 정말 그럴까?

 그런 시시껄렁한 영화였다면, 이렇게 시간내어 글 쓸 필요가 있겠어? 당연히, 그렇지 않다. 물론, '브랜든'라는 머리 좋은 주인공이 '사건'을 푸는 것까지는 같지만 말이다.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이 필요하다. 탐정은 영웅이고, 영웅은 정의일까? '10대 느와르'라는 평을 받는 브릭을 보면서 그 질문이 떠올랐고, 영화는 대답했다. "그게 무슨 개소리야?!"

욕망을 따르는 탐정, 욕망을 따르는 범인

 브릭에서 등장하는 각각의 인물을 움직이는 건 '세상의 정의려는 지키려는 마음'도 아니고, '세상을 망가뜨리고 싶은 마음'도 아니다. 그저, 각자의 '욕망'일 뿐. 탐정 역할을 맡은 '브랜든'이라고 해서 '보다 올바른 마음'을 지닌 것도 아니고, 범인 역할을 맡은 인물이라고 해서 '보다 사악한 마음'을 지닌 것도 아니다. 오로지 각자의 '욕망'에 충실할 뿐이며, 그 '욕망'이 현실 속에 처한 위치에 따라, 탐정 역할을 맡고, 범인 역할을 맡는다.

 이러한 모습들은 담담한 영상 속에 잘 담겨있다. 엄청난 사건(주인공 '브랜든'의 전 여자친구의 죽음)을 직접 목격한 주인공 브랜든은 원한을 풀어주겠다는 자신의 욕망을 따르고, 범인이거나 '범죄'(마약 판매)를 저지르는 이들은 사건을 숨기기 위한, 돈을 얻기 위한 욕망을 따른다. 그 속에서 브랜든은 '사건 해결'을 위해서 영화 속에서 '악'의 역할을 하고 있는 이들과 거래를 하며, '선'의 역할을 하고 있는 학교 선생과도 거래를 한다. 이렇듯 주인공은 절차 하나 하나를 따지는 올곧은 영웅이라기보다는 사건 해결의 욕망을 위해 어떤 수단이든 거리낌 없이 쓰는 이에 가깝다.

세상의 퍼즐은 지독하게 엮어있는 법

 누가 옳은지 그른지에 대한 구분보다는 각자의 욕망의 위치에 따른 상황을 담담히 보여주는 브릭. 그러한 상황 속에서도 주인공 '브랜든'은 무지막지하게 사건의 퍼즐을 풀어나간다. 조금씩 조금씩 진실을 보여주는 브릭. 그리고 마지막에는 모든 추리물이 그렇듯, 주인공의 입에서 모든 퍼즐의 비밀이 술술 나온다. 그.래.서. 네가 '범인'인거야!

 아아…. 그러나 브릭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정말 모든 '퍼즐'이 풀린 것일까? 세상 살이는 그렇게 만만한 게 아닌 것. 단 1번의 추리로 세상의 모든 비밀을 알 수 없는 법이다. 안그런가? 살면서 수없이 우리에게 다가오는 '퍼즐'들. 그것을 풀었다고 한 순간, 그것은 다시 우리를 감싸안기 마련이다. 그것도 아주 지.독.하.게. 브릭은 마지막의 반전을 보여주면서, 이 뼈아픈 현실을 보여준다. 그 장면에서 마치, 영화 브릭은 이런 말을 하는 듯 싶었다. "세상의 퍼즐은 지독하게 엮어있는 법. 퍼즐을 만드는 이와 퍼즐을 풀어내는 이는 다르지 않아. 이게 세상의 법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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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 | 2008/08/16 12:45 | PERMALINK | EDIT/DEL | REPLY
역활 --> 역할
BlogIcon 여울바람 | 2008/08/16 14:51 | PERMALINK | EDIT/DEL
;; 지적 고맙습니다. 이 글은 전혀 문법 정리를 안한 글임을 알려드립니다.-_-; 지적하신 것 외에도 문법적으로 많이 틀렸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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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7/31 19:37
어쩌면

나는

너에게


응석을

부린 것

일지도

모르겠어



미안하고

고마웠으며

즐거웠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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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7/30 17:58
믿는다는 사실이 중요할 뿐

무엇을 믿는지는 신경 쓰지 않아.


그래서,

때로는 믿음을 배반하는 진실을

그토록 싫어하는 거지.


진실, 그 자체는

좋은 의미도 나쁜 의미도 없는

삭막한 단어에 불과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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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7/29 21:53
『위기의 노동』을 읽으며 떠오르던 게
한국이 겪고 있는 위기를 거칠게 말해 '신자유주의'라고 정할 때

나의 삶의 그 한 가운데를 관통하고 있다는 기분이었다.
누구든 안 그러겠냐마는….

모두가 겪고 있지만,

그 자체로는 지독한 고립감과 상실감의 특징을 띄고 있는 것.

나만 특별한 게 아니고, 누구나 겪는 상처라는 위안과
빌어먹게도 정말 시대의 한 가운데를 지나고 있다는 절망이
적절히 섞여서 나에게로 찾아왔다.


뭐,
즐겁게
즐겁게
지금, 여기에서
놀면 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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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7/29 21:22
"충고하건데, 더 늦기전에 돌아서요.. 내버려둬요. 모른척해요.

이 게임에서 이기고 싶다면..

만약 이 모든것이 게임이라고 생각한다면.."

- 황경신

*

후회하더라도

도망칠것을…

라고 가끔 생각한다.


뭐,

그 당시에는 게임에서 이기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고 믿었던 게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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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7/28 21:52
나는 철저하고 흔들림 없이 살지도 않거니와,
내가 여느 사람들과 조금이라도 다르게 사는 게 사실이라면,
그건 그렇게 사는 게 ‘옳기 때문’이 아니라 ‘편안하기 때문’이다.

- 김규항

*

내가 지향하는 삶의 태도.

이렇게 내가 생각했던 것이 명확하게 글로 쓰이면 유쾌하다.
약간 다른 게 있다면, 나는 '편안'이라는 단어 대신에 '재미'를 넣었다는 정도.

위선을 행하든
위악을 행하든
옳고 그름의 관점에 놓은 삶은
'편안'하지도 '재미'있지도 않다는 게
나의 결론이다.

아직까지는 지향하는 바와 살아가는 태도를 일치시킨 것은 아니지만,
어찌됬든 나는 '편안'하고 '재미'있는 게 좋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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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7/28 19:47
천성(天性)을 선택할 수 있으면 어떨까.
가끔, 내가 싫어질 때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싫다는 것은
'타인이 바라보는 나'가 싫다는 의미겠지.
자신이라는 타인도 포함해서 말이야.

헷. 끝없이 바꾸는 선택을 해도
나는 결코 만족하지 않겠지.

아아…….
언제쯤이면 나의 천성(天性)을 사랑할 수 있을까.

천성(天性)이란 본디
참으로 지독하다.


타인이 정해준 꼬리표가
나라는 생각을 해본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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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7/28 12:50
위기의 노동 - 6점
최장집 편집/후마니타스


87년 체제 이후 한국의 민주주의

 이 책은 묻는다. 87년 6월 항쟁 이후, 한국의 '민주주의'는 어떠한가? 완전한가? 수많은 사람들이 얻어내었던 민주주의는 지금, 여기에 있는 우리에게 어떠한 의미를 지니는가? 학자들의 소논문으로 채워진 『위기의 노동』은 각종 통계와 분석으로 딱 잘라 말한다. "이건, 우리가 원하던 민주주의가 아니잖아!"

 87년에 한국인들이 얻어낸 것은 무엇이었던가? 제대로 된 '절차'였다. 이제 '정치'를 우리 스스로 하겠다는 것이다. 민주주의라는 체제 속에서 '대통령 직선제'를 뽑으면, 저 독재자 마음대로가 아닌 우리 뜻대로의 세상이 찾아오리라는 믿음이 있었다. 그런데! 그런 세상에 정말 '도래' 하였던 것인가?! 하! 그렇다면 『위기의 노동』이 나올 이유도 내가 이 글을 쓸 이유도 없겠지.

 그랬다. 세상은 더 이상해져만 갔다. 87년 이후 조금씩 줄어들었던 '상대적인 경제 격차'가 97년, IMF가 터진 이후로 급속도로 증가하기 시작한 것이다. 아니, 우리는 분명 민주주의를 얻어냈는데 상황은 독재자가 있을 때보다 '사회경제적'으로는 더 나을 것이 없다. 대량 해고가 벌어지고 있으며, 비정규직은 끊임없이 늘어가고 있으며 그 끝에는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 그리고 이주 노동자가 자리 잡고 있다.  "젠장! 우리가 원했던 민주주의가 고작 이런 거란 말이더냐! 과연 민주주의란 것이 우리에게 밥 한 끼 줄 수 있더냐!" 라는 불만이 터져 나왔다.

 잃어버린 10년의 '진짜' 정체는 무엇이었던가?

 민주주의가 우리의 삶을 더 낫게 바꾸지 못할 거라는 회의. 바로 이게 위기다. 우리가 그토록 떠받들었던 민주주의의 위기! 그리고 이 위기는 '노동'에서 시작한다. 왜냐? '우리가 먹고 사는 문제'의 가장 중심에 있는 게 노동이기 때문이다. 실업률이 높은가 낮은가 그리고 실업률이 낮은 상태에서 우리가 하고 있는 노동은 어떠한가. 라는 문제인 것이다. 기왕이면 '안정'적이고 '높은 임금'을 받으면서 '안전'하게 '노동'하고 싶잖아!

 그러나 민주주의가 진행되면 될 수록 어째 우리의 소망은 이뤄질 길이 안 보인다. 87년의 민주주의는 우리의 노동을 지켜주지 못했다. 결국, 노동의 위기, 먹고사니즘의 위기가 도래하였다. 책 제목을 봐라. 대놓고 『위기의 노동』라고 쓰여 있다. 그렇다. 각종 복잡한 통계 계산 및 어려운 단어가 남발되는 논문 모음이 하고자 하는 말을 풀어쓰면 이렇다. “민주주의가 왔는디 삶이 왜 이리 팍팍하냐!”

 바로 이거다. 이 부분이 ‘진짜’ 잃어버린 10년의 정체인 것이다. 그래 그렇다면, 우리가 이렇게 된 이유는 귀가 닳도록 들어왔던 친북좌빨들의 무지몽매였던가! 아, 그건 개소리였다. 무지몽매까지는 맞는 건 같지만 말이다. 이 책이 괜히 논문 모음집이겠는가? 그것에 대해 분석을 했는데, 과도한 ‘좌빨들의 강제적 통치’가 아니라, 멍청한 ‘우빨들의 시장 숭배’가 문제였다. 잃어버린 10년의 진짜 정체는 ‘좌빨이라고 우기는 우빨들의 시장 숭배 정책’이였던 것이다.

 이러한 분석은 최근에 내가 재미있게 읽었던 장하준 씨의 한국경제 분석과 비슷하다. 국가 혹은 정치적 힘이 시장을 제어하지 않고 방종함으로서 한국 경제가 위험해진다는 말인데, 자세한 것은 『나쁜 사마리아인들』을 비롯한 책을 참고 하시라. 여하튼, 우리가 만들었던 민주주의는 시장의 자유주의를 지향하고, 그 지향점은 곧 노동의 위기, 먹고사니즘의 커다란 위기를 만들고 그 위기는 다시, 민주주의에 대한 불신을 만드는 악순환이 벌어진 것이다. 이, 악순환의 고리 속에서 우리의 삶은 바람 앞의 등불처럼 위태롭다. 결국, 개미지옥에 빠진 개미처럼 살려고 목숨 받쳐 토끼기만 할 뿐, 개미지옥을 없앨 수 있다는 믿음은 사라진 지 오래다.

위기탈출대비법. 밥 먹여주는 민주주의를 만들어야 한다!

 모든 위기에는 그에 맞는 해결책이 있는 법. 우리의 삶을 참으로 팍팍하게 만드는 노동의 위기이자 민주주의 위기에도 길이 있다고 학자들은 말한다. 그것이 무엇이냐? 답은 간단하다. “그래도 민주주의다!” 라고 한다. 아무리 밉고 화나고 짜증나고 열 받지만 이러한 위기를 타개할 방법은 민주주의에게 있다는 것이다.

 허나, 지금의 찌질한 민주주의로는 아무것도 이뤄지지 않는다. 87년의 민주주의보다 더 나아간 민주주의를 만들어야 한다. 그게 어떤 민주주의냐? 바로, ‘밥 먹여주는 민주주의’인 것이다. 이제, 절차뿐만이 아닌 실질적인 삶을 보장해줄 수 있는 강력한 민주주의만이 암울하고 암울한 위기에 대한 해결책이 될 수 있다는 거다.

 아름답고 고귀하고 피로 얻어낸 선거의 권리. 그 권리가 블루 하우스에 있는 놀부 놈들을 배 채우기 위해 존재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이제 니들 좀 그만 묵고, 우리가 많이 묵어야겠다! 고 외치는 민주주의! 그러한 민주주의를 어떻게 이뤄내느냐는 머리가 아픈 문제다. 하지만, 이 문제에 대한 고민은 최강의 ‘효율성’과 ‘공평성’을 담보한다. 고민하고 행동하면 할수록 민주주의가 우리의 밥을 책임져 줄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는 민주주의를 욕할 때가 아니라 민주주의에게서 ‘정당한 삥’을 뜯어낼 궁리를 해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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