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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에 해당되는 글 39건
2008/08/31 01:25




그댈 사랑하지 않아요


                             누드 사운드 유닛 (Nude Sound Unit)

그대와 처음 만났던
그날이 언제쯤이었는지

그대와 함께 걸었던
그 길은 어디쯤이었는지

아무것도 내겐 남아 있지
않은 기억인데 별것도 아닌데

바보처럼 그대는 아직도
내 생각하는지 그러고 있는지

그대가 줬던 그 반지
어디에 놓아두었는지

그다지 궁금하지도
않은 내 맘 알고 있는지

아나요 이런 내 마음을
알아줘요 말하지 않아도

밉나요 이런 내 모습이
그러지 않아도 제발 미워해요

그댈 사랑하지 않아요
이젠 사랑하지 않아요

정말 사랑하지 않아요
사랑했던 기억 모두 지워요



*

너 없이 살아갈 수 없어.
라고 믿었지만,
 
없어도 삶을 계속하는 게 인간이다.

너와의 관계 속에 삶의 의미를 찾고,
그러하기에 너의 부재는 곧 의미 부재라는 게
"너 없이 살아갈 수 없어."
라는 뜻일 테다.

그런데 의미란 것은
'너'가 주는 게 아니고
'나'가 만드는 것이다.

'너의 의미'가 사라지더라도
인간은 언제든지 '다른 의미'를 만들 수 있다.

…….

그렇다고는 해도,
너의 의미가 아닌 다른 의미로 살아가는 삶은
완전히 다른 삶을 사는 것이다.

너의 의미로 살아갔던 하나의 삶은
더는 존재할 수 없는 것, 살아갈 수 없는 것이 된다.

너 없이 살아갈 수 없어
라고 말했던 그 삶은
이미 사라져버렸는지도 모르겠다.

우리의 마음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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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30 13:50
 자경단이라는 개념이 확실하게 박힌 미국과 달리, 한국은 그러한 예를 찾아보기 어렵다고 저번에 말했었다. 그런데 최근에 한국에서 자경단이라는 개념 비슷한 게 나타난 사실을 문뜩 떠올랐다. 그건 2008년 6월 즈음에 등장한 촛불집회에서의 '예비군'이다. 최근 사례 중 이만큼 확실하게 자경단의 성격을 지닌 것이 있을까!

 물론, 방향이 조금 다른 자경단이었다. 기존의 성격은 국가가 막아낼 수 없는 것(힘에 의해서든, 관습에 의해서든, 법에 의해서든)에 대한 스스로 보호였다면, 촛불 집회의 자경단은 국가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선택일 '수도' 있으니까. 아니, 어쩌면 국가가 보호해주지 못하는 대상에 대한 또 다른 '국가의 역할'을 담당하려는 것이므로 같이 볼 '수도' 있겠다.

 방향에는 이견이 있겠지만, 성격은 같다고 생각한다. 힘에 대항한 또 다른 힘. 이게 자경단의 본질이 아닐까? 예비역 '오빠' 혹은 '아저씨' 들의 나이와 성별을 볼 때, 힘을 상징하는 게 아니라 부정할 수 없다. 결국, 자경단의 탄생 동기와 목표는 힘에 제압되지 않는 힘의 추구이다.

 이렇게 생각의 꽈리를 틀다 보니, 떠오르는 게 있다. 바로, 5.18 광주민주항쟁이다. 이것보다 한국의 자경단(그리고 촛불의 자경단)의 성격의 근원을 정확히 보여주는 게 있을까? 이 자경단 역시, 국가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수단이면서 또 다른 국가(혹은 공동체)의 역할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힘에 대항한 힘'이라는 자경단의 성격을 확실하게 보여준다.

 그러고 보니, 내가 수없이 들었던 5.18 이야기는(내가 사는 지역적 특성상 나는 5.18을 이야기를 교과서보다 먼저 접했다.) 전형적인 힘과 힘의 싸움을 보여준다는 생각이 들었다. 총을 들었던 것은 '남성'이었고, 역시 마지막까지 도청에서 장렬히 전사한 시민은 '남성'이었다. 시민군에게 김밥과 물 같은 것을 주었던 분들은 '아주머니'였고, 국가의 명령에 따른 군인들에게 총살당한 끔찍한 피해자는 '여성'(과 '남성')이었다. 당시, 시대 상황을 고려하더라도, 전형적인 힘과 힘의 대결이다.

 여기서 혹시, 너는 국가가 명령한 군인들에게 각종 억압과 폭력에 그냥 당하라는 말이냐. 라고 하신다면 물론, 아니다. 그러면, 똑같이 한 판 붙어야 하지 않겠느냐. 이것도 나는 마음 내키지 않는다. <자경단과 배트맨>이라는 글에서도 말했다시피, 힘은 평화를 부르지 못한다.

 그렇다고, 큰 힘에 대해서 대항한 힘, 자경단에 비난할 마음은 없다. 촛불 집회에 나온 예비역들은 분명히, 선의로 나왔을 테고, 5·18 때는 더더욱 자신의 목숨마저 걸었을 만큼 비장했으니까. 요지는 이거다. 나는 평화를 만들 수 없는 힘에 대한 관점과 믿음은 결국 또 다른 힘을 부르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 악순환은 나에게 진정 두려움을 안겨준다. (이제, 세상은 몇 개의 버튼만 누르면 한순간에 지옥으로 변할 수 있을 만큼의 무기가 가득하다. 그게 혹, 실수로 눌러진 경우라도.) 이러한 두려움에서 벗어나고 싶기에 우리는 평화를 얻기 위한 다른 방법을 고민해주길 부탁한다는 것이다.


 어쩌면, 한국에서 힘을 통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고 가르치는 첫 번째 선생은 바로, '사랑의 매'가 아닐까. 대부분 사람은 매 너머의 사랑을 느끼기보다는, 매가 가진 힘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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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29 23:37
여보게,

누구나 원하는

보편적 행복을

나에게 파시지

말아 주시겠소?



왜.나.는.그.것.에.행.복.해.야.'만'.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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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28 22:54
의미가 없는 데,
의지가 나올 리

없잖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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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28 13:42
 요즘 읽고 있었던 데릭 젠슨의 『거짓된 진실』을 보면, 문명에 대한 진실 혹은 생산 문화에 대한 맹목적 믿음이 얼마나 끔찍한가를 보여주었다. 특히, 문명의 대표라고 할 수 있는 기업이 얼마나 교묘하고 잔인하게 '생산'을 위해 '생명'을 하나하나 꺼뜨리고 있는가에 대한 생생한 사실 나열은 읽는 순간을 괴롭게 만들었다.

 또한, 우석훈 씨 글에서 종종 보았던 '건설 혹은 생산'에 대한 욕망이 우리의 생태에 얼마나 끔찍할 수 있는가에 대한 진실, 그리고 '지역 개발'이라는 논리하에 대한민국에서 벌어지는 참혹하고도 쉽게 해결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이야기가 떠오른다.

 이러한 두 가지 시선을 생각나게 하는 사건이 있었다. 그에 대한 자세한 기사는 경남도민일보의 기자로서 블로그를 통해 온라인에서 지역 저널리즘을 시도하고 있는 김주완 김훤주의 지역에서 본 세상의 포스팅에 나와있다. <월드 베스트 사기꾼들 수녀에게 사기치다.>

 아래는 그와 관련한 영상이다.



 이를 통해 생각나는 단상들….

1. 생산 문화에서, 관료(혹은 정부)나 기업은 하등 다를 게 없다. 더욱 더욱더 많은 생산을 원하는 욕망은 정부와 시장이 하나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시장을 견제하는 정부? 아니, 오히려 시장과 하나 되는 정부에 가깝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부와 시장의 경계가 불분명해지는 게 파시즘에 가깝다고 말했던 어느 학자의 말이 생각난다. 시장과의 친화성을 대표적으로 내세운 CEO가 대통령이 되는 어느 나라에 파시즘 징후가 보인다는 사실은 오싹하기 그지없다.

2. 생산 문화에 대한 맹목적 추구는 정부와 시장만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이미, 우리 문화는 생산에 대한 종교적 신앙이 강력히 퍼져 있다. 이것은 다시 말해서, 지역 개발에 관련한 문제에서 단순히 정부와 시장에 싸울 뿐만 아니라, 지역민에게 뿌리박힌 생산 문화에 대한 맹종을 없애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생산 문화의 가장 큰 종교적 성지는 어디인가? 지역개발에 찬성하는 지역민이 있는 작은 시골인가?
 
 그렇지 않다. 그것은 바로, '도시'다. 모든 지역이 서울이 되는 것을 추구하면서 강력한 위계구조가 있는 한국에서 지역민들이 받는 소외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역설적으로, 지역개발의 문제를 해결하려면 도시개발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위의 영상에서 등장한 '뉴타운'은 그것을 암시한다. 뉴타운에 대한 욕망이 있는 한, 지역 개발의 욕망 또한 줄어들지 않을 것이다.

3. 생산에 대한 욕망을 투표로 제어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예전에 우석훈 씨 글에서 읽었던 글이 생각난다. 지역 개발의 문제는 '투표'로 넘어가는 순간 끝난다는 글이었다. 그때쯤이면 이미, 돈과 권력 등으로 이미 포섭했기 때문에 투표 이후에 바로 개발로 넘어간다고 했다. 마산시의 사례만 봐도 확연해진다. 투표 계획까지 짜놓고 마구잡이로 해도 인정하고 넘어가는 욕망의 문화 속에서 투표는 전혀 민주주의적이지 않게 된다.

4. 자본에 넘어가지 않는, 민주적 지역 언론이 절실하다는 점이다. 위와 같은 생산에 대한 욕망 문화가 만들어내는 사건은 참으로 많을 것이고(즉, 흔한 사건이라는 것) 이것을 서울 일간지들이 정밀보도를 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 것이다. 이러한 사건들을 기록하고, 알리고, 생산 문화에 대한 욕망을 제어할 힘을 기를 수 있는 것은 공동체의 성격을 만들어가는 지역 언론이다.

5. 지금까지 이런 일은 많이 일어났고, 앞으로는 더욱 가속화 될 것이다. 그 속에서 우리는 미국(그리고 수많은 생산에 대한 욕망이 넘쳐나는 다른 나라)의 사례처럼 이웃을 잃고, 자연을 잃고, 공동체를 잃고, 인간성마저 잃어갈테다.(아니, 이미 잃어가고 있다.) 그 대신 생산에 대한 무한한 신앙심과 욕망을 얻겠지.

 우리가 잃어가는 것을 되찾고 싶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정부와 기업을 규제하고, 지역 언론이 이러한 문제를 쉽게 지나치지 않는 실천도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도 이러한 사건을 만든 더욱 근본적인 가치관에 대해 되물어야 한다. 얼마 전에 개봉한 Wall - e 에서는 Buy n Large 라는 다국적 기업이 존재한다. 기업 이름에서 느껴지는 그 생산에 대한 가치관. 이것을 뛰어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 가치관 아래 생산활동을 하는 기업이 망가뜨린 이 지구를 떠나야 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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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08/30 02:24 | PERMALINK | EDIT/DEL | REPLY
비밀댓글 입니다
BlogIcon 여울바람 | 2008/08/30 07:09 | PERMALINK | EDIT/DEL
음…. 맞아.
맹목적 믿음은 매우 위험하지.
그리고
현대에서 가장 큰 맹목적 믿음은
'생산'에 대한 숭배라고 생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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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27 19:22
 영화, 다크나이트에서 배트맨의 본질은 결국 자경단이라고 할 수 있다. 자경단이란 무엇인가? 위협으로부터 스스로 지키는 민간단체다. 다시 말해, 사회의 법률과 공권력이 보호해주지 못하는 부분을 스스로 채우겠다는 의지를 갖춘 이들이다.

 자경단이라 하면, 흔히 무능력한 법과 공권력 속에서 스스로 살아가기 위한 약한 이들의 수단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각종 수많은 이미지(의 대부분은 미디어에서 온 것이다.)에서 자경단은 '정의'를 지키기 위한 약자이거나 영웅이다.

 그런데 자경단이란 말이 매우 익숙한 미국에서 자경단이 한 행위는 무엇인가? 그들은 무능력한 법과 공권력이 해결하지 못하는 검둥이와 백인들을 위협하는 수많은 유색인종, 그리고 그들에게 동조하는 배신자들을 처벌하는 데에 힘껏 싸웠다. 그들에게는 흑인과 유색인종, 그들과 함께하는 변절한 백인들이 큰 위협으로 보인 것이다.

 여기서 드러나는 사실은 실제로 자경단이 처벌할 수 있는 대상은 연약한 개인 혹은 집단이라는 것. '스스로 처벌할 수 있는 위협'이라는 말은 결국, 위협적이라고 믿는 망상이라는 말이다. 그리고 본질적으로 진짜 위협적이나 스스로 처벌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자경단은 무력하거나 외면한다.

 자경단이라는 말이 낯선 한국은 어떠한가? (실제로, 다크나이트에서 배트맨을 자경단으로 번역하지 않고 무법자로 번역한다. 그만큼 자경단이라는 말이 우리에게는 낯설다.) 오프라인은 모르겠으나, 온라인에서는 자경단의 흔적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것은 바로, 인터넷에서 종종 보이는 사회적 윤리와 어긋나게 살아가는 이들에 대한 '집단적 응징'이다.

 법이나 공권력이 채우지 못하는 정의를 스스로 채우겠다는 마음가짐은 자경단과 똑같다. 그리고 그들은 집단적으로 댓글이나 방명록, 쪽지 등으로 사회적 정의를 위한 처벌을 한다. 가벼운 비판부터 욕과 개인 신상정보를 공개해서 사회적으로 묻어버리는 행위까지 이른다.

 역시나 행위 양태도 미국의 자경단과 같다. 사회의 정의에 위협된다고 생각하는 이들에 대한 처벌. 그리고 어디까지나 '스스로 처벌할 수 있는 이'만을 대상으로 한다는 점이다. 각종 욕설과 개인 신상정보를 공개하는 것으로 처벌할 수 없는 대상은 결코 보려고 하지 않거나, 그저 무력한 행위만을 할 뿐이다.

 이러한 미국과 한국의 자경단의 모습을 보면, 다크나이트의 배트맨이 떠오른다. 배트맨이 처벌할 수 있는 것은 어디까지나 범죄자 '개개인'일 뿐이다. 그래서 고담시티에는 영원히 평화는 오지 않을 테고, 배트맨이 필요 없는 날은 영영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평화로운 고담시티, 위협 없는 세상에서 살아가고자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자경단이 아니다. 자경단은 자신이 스스로 징벌할 수 있는 위협만 인식한다. 하지만, 평화를 위해서 우리는 스스로 징벌할 수 없는 위협에 대해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그게 진짜 정의를 위한 첫 걸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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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27 17:07
언뜻, 비이성적이고 비합리적으로 보이는

한나라당의 행동과 태도는

실은, 우리가 언제나 경험하는 '욕망'으로 되돌아 본다면

이상할 것이 하나도 없다.



즉,

대한민국의 문화는

한나라당의 태도를

양산하는 구조 속에 있다.



"부~자 되세요^^"

라는 말이

왜 덕담이 아닌지 이해하지 못하는 문화가 지배하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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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nooegoch | 2008/10/31 03:47 | DEL
최소한의 양심이라도 남아있다면 그만 물러나라! 돈은 이미 충분히 챙겼지 않냐. 저작권관련더보기.. ※ 마음껏 나누어 널리 세상을 이롭게하라! & 마음껏 네 생각을 표현하라! & 그리고 나눔바구니에 관심도 둠뿍! 원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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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27 15:02
 ※ 아래 글은 인디고 서원에서 내는 청소년들이 직접 만드는 청소년 인문교양지 <INDIGO + ing> 12호에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


우리가 진정으로 저항해야 하는 것


 현재 우리나라에서 끊임없이 이슈가 되고 있는 광우병, 그리고 AI, 끊임없이 보도되는 십대들의 일사불란한 움직임과 날카로운 비판은 새로운 세대의 등장이라고 이름 붙여질 정도로 신선한 모습이다. 그렇지만 다들 너무 이기적인 것 같다. 촛불시위 피켓엔 '이명박 너나 미친 소 쳐먹어', '내 인생 펼쳐보려고 하니 광우병 걸렸네' 등 내가 죽고, 내 이웃이 죽고 우리 국민이 죽는 문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조금 더 나아간다 해도 친미 정부, 자국민을 생각하지 않는 정부를 탓하는 지점에서 끊긴다. 대한민국 안에만 들어오지 않으면 된다는 생각들이다. 그러나 지구 위 어디가에서 미친 소와 병든 닭, 그리고 오리는 여전히 아프다. 이런 병이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 누가 어떻게 끊어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하는 청소년은 집회현장에는 거의 없었다. 좁은 우리에 꽉꽉 채워 넣어 면연력을 떨어뜨리고, 지구상의 모든 인간들이 충분히 먹을 만큼 많은 곡식을 소에게 먹여 몇몇 소수가 먹을 고기를 만들고, 그도 모자라 소가 소를 먹여 병들게 만든 것. 이것이 가장 근본적인 문제인데 말이다. 나는 이것을 '얕은 관계만 맺는 버릇' 때문이라고 본다. 타인과 나 사이의 관계뿐만 아니라 공부하는 것도, 내가 살고 있는 환경을 생각하는 것에 있어서도 그렇다. 어느새 우리의 가치관, 곧 생각의 틀은 거기서 더 넓어질 엄두를 내지 않게 된다. 아이들이 느끼는 두려움 역시 표면상에 드러나 있는 현상, 딱 그만큼이다. 야자도 째고 달려온 학생들을 언론이 흔히 말하는 '우리의 내일을 책임질 의식 있는 청소년'으로까지 추켜세우기에는 과분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개인의 목소리가 점점 모여 연대하고, 끊임없이 보도딜 정도로 커다란 움직임이 되었지만 그 힘의 원천이 된 두려움은 그저 자기 안에만 있을 뿐이다. 타인의 고통을 자신의 것으로 끌어오지 못하고, 내가 아닌 다른 생명의 존엄성에 대해서는 무관심하다. 브라질의 MST(Movimento dos trabalhadores rurals Sem Terra, 땅 없는 농민 운동)활동의 기본적 정신은 '내가 일하고 내가 필요한 것만 취함으로 끝나는 것이 아닌 우리 공동체를 위한, 더 나아가 도시와 세계를 위함'이다. 생명을 향해 온 힘으로 나아가는 긍정적인 노동이 몸에 베인 이들은 여전히 가난하고, 자신들의 배도 제대로 채우지 못하며 힘들게 살지만 도리어 도시 사람들을 걱정한다. 우리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우리의 행동을 촉구하는 두려움이 이기적인 것이 아닌, 이타적인 성격을 띠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

- 정재윤
- <INDIGO + ing> 12호


*

지구 상에서 광우병의 위협을 받지 않고 살려면,
이명박 대통령은 물론이고 다른 사람들이 그러한 고기를 먹지 않기를 바라야 한다.
그뿐만 아니라, 그러한 질병 속에서 고통받는 동물들에 대한 슬픔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뭐, 대략 이런 이야기가 아닐까….

내가 요즘 느끼는 게 있는데,
정부에 대한 '증오'와 미친 소에 대한 '증오'가 바꾸는 것은 그렇게 많지 않다는 것이다.

사랑과 평화…. 이것보다 생태적이며 미래적인 용어가 있을까.
라는 생각이 문뜩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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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26 19:20
 내가 좋아하는 작가가 있느냐고 물으면, 나는 '우석훈'이라고 대답할 수 있다. 좋아한다는 것은 옳고 그름과는 다른 차원의 말이며, 객관적이기보다는 주관적인 의미다. 여하튼, 그래서 나는 우석훈 씨가 쓴 책을 사서 재밌게 읽고 그의 연습장 블로그(http://retired.tistory.com/)에 종종 들어가서 그의 생각 더미들을 훑는다. 그 중 좌파와 사회과학자에 대한 생각이 흥미롭다.

1. 좌파…? (전문)

우파는 부패로 망하고, 좌파는 분열로 망한다고 한다.
이건 적들의 음모이다.

좌파는 다양성을 확보하고 있을 때 가장 풍성하고, 설명력도 높아지도 현실 대응능력도 강해지는 것 같다. 분열하면 우파들이 불리해지니까, 일부러 이런 말을 만든 것이 아닐까, 그렇게 종종 생각한다.

그럼 언제 한국의 좌파들은 정치적으로 부흥기를 맞을까?

내 기준은 간단하다.

< 자본론>을 읽지 않아도 좌파가 될 수 있는 때, 그 때 한국 좌파가 부흥기를 맞을 것 같다는 게 내 작업 가설이다. (그렇다고 팩스 몇 장과 <꽃파는 처녀>만 읽으면 된다던 그 시기를 회상하는 것은 아니다.)

더 이상 자본론의 권위에 기대지 않은, 수많은 좌파의 분파들이 다양한 흐름으로 서로 견제하고 때때로 경쟁하면서 담론이 꽃 피고, 설명을 위한 시도들이 생겨나는 시기, 그게 내가 바라는 세상으로 가기 위한 출발 조건이다.



*

 "『자본론』을 읽지 않아도 좌파가 될 수 있는 때" 이 말에 느낌이 팍! 오더라. 뭐랄까. 자본론은 분명, 사회구조를 보는 데 유용한 시선을 던져준다. 하지만, 그게 '성역화'되거나 '필수 요소'가 되므로써 자본론을 읽지 않는 많은 이들이 좌파적 태도에 공감하는 데에 장벽을 만든다. 좌파라는 것은 '삶' 속에서 '본능'적으로 다가와야 하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책은 그 '본능'을 '이해'하는 데 쓰이고….


2. 사회과학자…? (전문)

좋은 사회과학자가 되기 위한 길

사회과학은 문학보다는 훨씬 배고픈 것 같기는 한데, 나름대로 보람은 있는 것 같다.

좋은 사회과학자가 되기 위해서는 독서가 많아야 한다는 것은 당연한 얘기인데, 이건 하나마나한 얘기이다. 엉뚱한 책 수 십만권 읽어봐야, 별 도움 안될 것 같다.

좋은 책을 읽어야 하는데, 좋은 책들의 특징은, 하나같이 재미없고, 따분하고, 너무 작은 얘기를 이해하기 위해서 주변에 이해해야할 것들이 너무 많다.

재미없어도... 그걸 읽지 않으면 죽으니까, 참고 읽는 수밖에 없다.

결 국 정치적 입장으로 최소한 좌파와 우파, 어느 한 쪽을 선택하는 수밖에 없는데, 그 어느 쪽을 선택하더라도 나름대로의 사회과학의 길이 열리기는 하는 것 같다. 우파라도 좋은 학자가 될 수 있고, 좌파라도 좋은 학자가 될 수 있는 것 같다.

다만... 한국에서는,

우파를 선택하면, 경조사와 골프가 넘어야 할 첫 번째 돌파물일 것 같다. 이 두 가지를 끊고도 학자가 될 수 있다면, 노벨상에 도전할 수 있는 대가가 나오지 않을까 싶다.

좌파를 선택하면, 친구를 끊어야 할 것 같다. 한국 좌파는, 술 처먹고 놀다가 망한다는 것이 첫 번째 장벽이지 않을까 싶다.

그 어느 편을 선택하든, 조선일보를 읽지 않는 편이 두 번째 장벽일 것 같다. 이것은 우파라도 마찬가지일 것 같다. 같이 머리 나빠진다. 내가 우파였더라도, 역시 조선일보는 안 봤을 것 같다.

좌파든, 우파든, 세번째 장애물은 수학일 것 같다. 수학을 전혀 안 하고, 숫자를 전혀 다루지 않고서 혼자 분석할 수 있는 길은, 없지 않을까 싶다.

통계와 수학이 조금 다른 데, 어쨌든 수리적 사유를 전혀 안하면, 혼자 뭘 해볼 수 있는 길은, 좌파든, 우파든, 한국에서는 열리지 않을 것 같다.


*

 읽다보니 뜨끔. 난 '좋은 책'을 읽고 있는가에 대답할 자신이 없었다. 좌파는 친구를 끊어야 한다 라는 말…. 술 처먹고 놀다가 망한다. 라는 말에 공감이 되는 나는 성격파탄자일까? -_-; 모르겠다. 술의 로망은 환상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무것도 남는 게 없다. 사람이 남는가? 정말… 남는가?

  마지막의 수학이라는 말은 정말 내 가슴을 뚫는 구나.-_-; 내가 사회과학도가 될지 안될지는 몰라도. 선택한다면 참으로 열심히 달려야겠구나 라는 생각이 든다. 나의 방향 탐지에 여러 모로 도움이 된다. 우석훈 경제학자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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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26 18:16




 조경 생태는 엄밀히 말해서 '반(反)생태'적이다. 플라스틱 녹색이랄까. 눈을 즐겁게 하는 녹색 속에는 생명이 살지 않는다. 진짜 생태적인 것은 그 속에서 생명이 지속가능하게 살아갈 수 있느냐로 정해진다. 그러니까, 서울 도시 곳곳에 있는 조경 공원들은 엄밀히 말해서 생태적이지 않다.

 그럼에도 회색 건물 혹은 인위적인 화려한 색만 가득한 도시 속에서 살아가다보면 조경 녹색마저 그리워진다. 그저 자연의 '색'일 뿐임에도, 그 색이 정신적인 위안이 된다. 내가 살아가면서 근처에 '공원'이 있는가를 찾아보는 날이 올지 몰랐다. 게다가 어렸을 적에 이해되지 않았던 어른들의 산에 대한 애정이 올올히 이해가 되어버렸다. 그래, 이렇게 계속 살다보면 산이 그리워지지 않을 수 없겠구나.

 예전부터 가고 싶었던 공원이 있었다. 내가 그 근처에 살 때는 언제든지 마음만 먹으면 가게 될 거라고 믿었다. 그런데…. 다른 곳으로 이사하기까지 나는 단, 한 번도 간 적이 없었다. 오히려 그 공원과 멀리 떨어진 곳에 사는 지금에서야 그 공원에 가게 되었다. 마침, 약속이 있었던 역에 공원으로 가는 출구가 있었던 것이다. 정말, 소중한 것은 가까이 있을 때는 느끼지 못한다는 것. 도대체 얼마나 많이 깨달아야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 것일까.

 공원을 천천히 거닐며 햇볕과 바람, 녹색을 마음껏 느꼈다. 기분이 좋더라. 인간이 왜 지구라는 환경을 지켜야 하는 지를 아이러니하게 인위적인 공원에서 느끼는 도시인이랄까. 문뜩, 내가 어렸을 적에 꾼 꿈이 생각났다. 나의 아동기 시절, 국어책에 나오는 시 뒤편의 그림 속에 살고 싶다는 꿈…. 초록의 언덕 속에서 마음 편히 살아가면서, 해질녘이 되면 연기가 폴폴 나오는 따뜻한 집으로 들어가 가족과 함께 저녁을 먹는…. 그 정도면 나는 충분히 행복했다. 언젠가 그렇게 살면 참으로 행복하겠다는 꿈을 꾸었다. 언제부터였을까. 더는 시를 낭송하는 수업이 사라질 때였을까. 초록빛 언덕의 꿈은 어느 샌가 나의 상상 속에서 사라져 버렸다.

 한 때나마 그런 꿈을 꿀 수 있었던 것은 '그나마' 내가 녹색과 함께 생활했기에 가능한 게 아니었을까. 어렸을 적에 시골에서 살았던 아이도 아니고, 친척집도 녹색과는 거리가 멀었던 나였다. 하지만, 공원은 기억난다. 인간을 위한 녹색. 나는 그 속에서 초록빛 언덕 상상의 씨앗을 얻지 않았을까. 아, 그리고 도시 속의 산에도 많이 간 기억이 난다.

 내가 지금도 녹색에 그리움과 신뢰가 있다면, 그것은 어렸을 적에 나의 주위에 있었던 '플라스틱 녹색' 때문이라는 사실은 아이러니 그 자체다. 내가 어렸을 적 플라스틱 녹색에서도 많은 생명들이 있었고 그 생명들은 나의 감수성에 영향을 주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러한 플라스틱 녹색마저도 찾아보기 힘들다. 그 뿐만이 아니라, 그 것을 누리는 것 자체가 '권력'이 되어버렸다. 지구를 살리고 싶다면, 생명의 색인 녹색을 잃고 싶지 않다면, 아니 적어도 스스로 파멸로 달려가는 문명의 걸음을 조금이라도 늦추고 싶다면 보다 많은 이들에게 녹색을 누릴 수 있는 권리를 주어야 하지 않을까.

 녹색의 소중함을 겪어보지 못한 이들이 녹색을 위해 울어주거나 싸울 것이라고 생각은 하지 않는 게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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