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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2.11 08:36
좁은 문
앙드레 지드 지음, 이혜원 옮김/펭귄클래식코리아(웅진)



이런, 씨바

 앙드레 지드의 『좁은 문』을 읽는 동안 머리 속에서 내내 떠나지 않는 말이 있었다. 이런, 씨바. 이 책, 현기증으로 나를 어지럽게 했다. 다시 말해서, 머리로 이해하려고 하였으나, 그보다 마음이 먼저 앞서나가 카오스로 뒹그렁 하고 빠져버렸단 말이다. 하여, 앙드레 지드의 『좁은 문』은 요러요러하고 이러이러해서 저러저러한 책이다. 라며, 짐짓 '나는 결코 흔들리지 않는 곧은 나무인 듯' 폼 잡는 글, 못쓰겠다. 대신, 시리면서 아릿한 아픔, 주먹을 불끈 쥐고 바들바들 떠는 분노, 그럼에도 그런 아픔을 사랑할 수 밖에는 무력감, 이런 혼란 고대로 보여주겠다. 그게 내가 『좁은 문』을 읽은 느낌이다.


제롬, 아프다 내 마음


 내가 그 누구보다 감정이입이 잘 되었던 이, 그건 제롬이다. 제롬은 처음부터 끝까지, '알리사'만을 좋아한다. 그래, 이 놈 순정파다. 순정파는 죽어라 한 사람을 사랑할 뿐만 아니라, 죽어라 한 사람만을 '바라본다.' 한마디로 다른 곳 볼 줄, 모른다. 아름다운가? 뭐, 그래. 남이 보기엔 아름다울 지도 모르지. 허나, 세상은 영화처럼 순정파가 행복해'져야만'하는 곳이 아니다. 오히려, 그 순정, 쌉싸름하게 변할 때까지 죽어라 마음 아프게 하는 원인이 되는 경우가 다반사.

 그래서 순정파 제롬의 '아름다웠던 시절'은 잠깐 뿐이다. 사랑하는 알리사의 여동생, 쥘리에트가 자신에게 고백하는 순간부터, 아니, 어쩌면 알리사를 좋아했던 순간부터 지독한 아픔은 예정된 수순이었다. 나중에 알겠지만 알리사와는 사랑의 방식이 전혀 달랐으니까. 어찌됬든, '어느 순간' 부터, 알리사는 변한다. 뭐, 변한다기 보다는 원래 그렇게 될 미래였는지도 모르겠지만. 그러한 변화의 순간, 제롬은 불안하다. 본능적으로 자기가 겪게 될 아픔을 느꼈는지도.

 다짐했던 바대로 나는 일요일마다 그녀에게 긴 편지를 썼다. 그 외에 다른 날에는 같은 반 친구들과는 거리를 둔 채 오로지 아벨하고만 어울려 지내며 알리사에 대한 생각에 젖어 살았고 나 자신이 관심 있는 것들보다 알리사가 좋아할 만한 내용을 우선시하여 내가 좋아하는 책에 그녀가 알아보기 편하게끔 표시를 잔뜩 해두었다. 그녀의 편지들은 여전히 나를 불안하게 하는 구석이 있었다. 내 편지에 꼬박꼬박 답장을 하긴 했지만 내게 응하는 그러한 열의 속에는 순수한 마음의 이끌림보다는 내 공부를 격려하기 위한 배려의 마음이 더욱 도드라져 보이는 것만 같았다. 또한 작품의 평가와 논의, 비평 등이 나에게는 내 생각을 표현하는 방법에 지나지 않는 데 반해 그녀에게는 자기 생각을 내게 숨기기 위한 방편으로 사용되고 있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간혹 그녀가 재미 삼아 그러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품어볼 정도로…… 하지만 아무래도 좋다! 일절 불평을 않기로 굳게 마음먹은 나로서는 그러한 불안한 마음이 편지에는 조금도 드러나지 않도록 조심했다. _ 펭귄 클래식, 74-75p

 이때 느꼈던 불안은 훗날, 제롬이 겪게 될 아픔을 본능적 느낀 건지도 모른다. 그러나, 제롬은 알리사를 너무도 좋아해서, 이런 불안을 감히 말할 수 없다. 그래서 알리사에게 보내는 편지에도 이러한 '불안'을 일절 드러내지 않는다. 허나, 상처가 생기면 그때그때 치료해야지, 놔두면 곪게 된다. 본능적으로 느꼈던 불안을 애써 무시했던 제롬은 곧 그 대가를 받게 된다.

"제롬!" 그녀는 내 쪽으로 시선을 돌리지도 않고서 말했다.

"나는 네 곁에 있으면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하다는 느낌이 들어…… 하지만 우리가 행복을 위해 태어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

"그럼 인간의 영혼이 행복 외에 더 무엇을 바라야 한단 말이야? 나는 흥분한 나머지 격한 어조로 물었다. 그녀가 중얼거렸다.

"성스러움……." 이렇게 말하는 그녀의 음성이 너무도 낮았기 때문에 내가 그 말을 들어다기보다는 그렇게 추측한 것에 가까웠다.

 내 모든 희망이 날개를 펼치고 나에게서 도망쳐 하늘로 날아가 버렸다.

"난 너 없이는 그곳에 이르지 못해." 나는 이렇게 말하고 난 뒤 어린애처럼 그녀의 무릎에 얼굴을 파묻고, 서글퍼서라기보다는 사랑에 복받쳐 울음을 터뜨리며 말을 이었다. "너없이는 못해. 너 없이는 못한다고!" 

_ 펭귄 클래식 139p

 알리사의 변화는 여기에 와서 절정을 달린다. 그리고 그 변화의 이유도 밝혀진다. '인간의 행복'보다 더 중요한 '성스러움'이 중요해서라니! 이때, ' 내 모든 희망이 날개를 펼치고 나에게서 도망쳐 하늘로 날아가 버렸다.'에 서 얼마나 내 마음이 쓰렸는지.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는 줄, 함께 가고 있는 줄 알았던 알리사는 다른 곳, 다른 길을 걷고 있었으니 그 이루 못할 상실감과 고독감을 어찌하랴. 그 이후 부터, 제롬은 계속 감정의 혼돈 속에서 허우적거린다. 희망이 없을 수록, 더욱 희망에 매달리는 법. 제롬은 알리사에 대한 사랑을 멈출 수가 없다. 세상에는 마음이 멋대로 움직일 때가 있는 법. 그래서 헛된 희망을 품어보기도 하고(그 순간 얼마나 희망에 우쭐했던지! 그때까지도 나의 슬픔은 모두 내 탓이라고 자책하고 있었으므로, 그녀의 말 한마디만으로도 내 마음의 병은 씻은 듯 나을 수 있었으리라. 148p), 차마 알리사를 탓할 수 없어서 자신을 원망하기도 한다. (그러고 나면 나는 곧 모든 불평을 나 자신에게 돌렸다. 그것은 그녀에 대한 비난에 빠져 들고 싶지 않아서기도 했지만, 내가 그녀에게서 무엇을 기대했는지 , 그녀를 무엇으로 비난할 수 있는지 더 이상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154p) 
 
 결국, 순정파 제롬은 알리사에 대한 사랑을 버리지 못한다. 소설의 후반부에 쥘리에트는 묻는다. "희망 없는 사랑을 그렇게 오래도록 마음속에 간직할 수 있다고 믿는 거에요?"  이에 제롬은 답했다. "그래,쥘리에트." 이정도면 순정이 거의 신앙급이다. 이토록 변치 않는 마음을 보며, 분노, 짜증을 넘어, 그저 마음이 아플 뿐이다. 특히, 아래의 한 줄에 너무도 아릿했다.

 아니, 그때도 나는 그대를 책망하진 않았소, 알리사! 다만 지날날의 그대 모습을 더는 알아볼 길이 없었기에 절망하여 울었던 거요. _ 펭귄 클래식, 144p

 

알리사, 너 행복하니?

 『좁은 문』에서 나를 혼돈으로 빠뜨린 주요한 원인, 그게 알리사다. 어렸을 적부터 제롬과 연인이었던, 알리사. 알리사에게 있어서, '제롬'에 대한 사랑은 어떤 의미였을까? 어렸을 때부터 서로를 원했고, 함께 있어서 즐거웠던 사이. 그러나 제롬이 알리사에게 부여하는 의미와 알리사가 제롬에게 부여하는 의미는 애초부터 달랐는지도 모른다. 아직, 알리사가 어렸을 적 그의 아버지와 대화하는 부분에서 알리사가 제롬에게 부여하는 의미를 유추할 수 있다.

"아버지는 그 애가 훌륭한 사람이 될 거라고 생각하세요?"

이 대목에서 외삼촌의 음성이 높아졌다.

"애야, 네가 어떤 의미로 '훌륭한'이란 말을 쓰는 것인지 난 무엇보다도 그걸 알고 싶구나! 보기엔 그렇지 않아도, 그러니까 인간의 눈에는 그렇게 보이지 않더라도 사실은 아주 훌륭한 사람도 있는 법이야…… 하느님이 보시기에 아주 훌륭한."

"저도 그런 뜻으로 한 말이에요."

"게다가…… 그걸 어떻게 알 수 있겠니? 그 애는 아직 어리단다…… 물론 장래가 아주 유망하기는 하다만, 성공하자면 그것만 가지고는 안 되는 법이지……."

"그럼 또 뭐가 필요한데요?"

"글쎄, 뭐라고 하면 좋을까? 신뢰라든가, 도움이라든가, 사랑이……"

"도움이라니, 뭘 말씀하시는 거에요?" 알리사가 말을 가로챘다.

"내가 받을 수 없었던 애정과 존경 말이다."

외삼촌이 쓸쓸하게 대답했다. _ 펭귄클래식 37p



 한 번 생각해보자.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은 그가 '훌륭하기' 때문인가? 아, 물론 여러 좋은 점이 훌륭하게 보일 수는 있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누군가를 좋아하는 것은 그 사람의 장·단점의 모든 것을 사랑하는 것. 세상에 완벽한 사람 없고, 흠 없이 깔끌한이는 없는법. 훌륭한 사람만 사랑하한다면 도대체 누구를 사랑한단 말이더냐. 

 그렇다면 지금, 알리사가 하는 것은 사랑이 아니냐? 그런 것은 아니다. 사랑하기에 '훌륭한 사람'이 되기를 바라는 것은 한 가지 있을 수 있다. 바로, '부모(보호자)로서의 사랑'이다. 훌륭한 사람이 되어라. 이 소리를 부모님이 하지, 애인이 하던가. 결국, 알리사의 사랑은 '혼돈으로 빠져드는 뜨거운 감정'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한 사랑은 알리사와 제롬의 미래가 밝지 않을 것임을 암시한다.

 본격적으로 알리사가 제롬에 대한 태도를 바꾼 사건은 '쥘리에트 고백'사건 이후다. 자신이 사랑하는 친동생 '쥘리에트'가 '제롬'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 또 자신과 제롬을 위해 '사랑하지도 않는 사람'과 결혼을 하려는 것을 알게 된 사건이다. 그 후 알리사는 제롬을 만나지 않고 멀리하는 등, 태도가 완전히 변한다. 그 이유를 '쥘리에트'와 '제롬'을 위해서라고 믿는 알리사. 그게 말이 되? 사랑에 빠져서, 머리보다 마음이 먼저 나오는 사람이 할 수 있는 행동이야? 자기가 쥘리에트와 제롬의 '엄마'라도 되는 줄 단단히 착각하는 거야? 여하튼, 알리사는 이때부터 돌이킬 수 없는 길을 선택한다.

 지금껏 자신이 느꼈던 모든 '행복'을 부정하고, 오직 '성스러움'에만 집착하는 것이다. 자신이 있으면, 제롬이 훌륭한 사람('신'만을 바라보는 사람)이 되지 못함을 슬퍼하는 알리사. 하루 빨리 제롬이 자신을 잊고 '신앙적 동반자'가 되길 원한다. 이를 위해 기도하는 장면이 있다.

 주여! 제롬과 제가 함께, 서로 의지하며 당신 앞으로 나아가도록 하여주옵소서. 한 사람이 다른 이에게 "형제여, 힘들면 내게 기대게."라고 한다면 "자네를 내 곁에서 느끼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네."라고 답하는 두 순례자처럼 인생의 길을 따라 걷게 하여주옵소서. 주여, 아니되옵니다! 주께서 우리에게 가르쳐주시는 길은 좁은 길이옵니다. 둘이서 나란히 걸을 수도 없을 만큼 좁은 길이옵니다._ 펭귄 클래식 185p

 이러한 기도는 다시는, 알리사와 제롬이 '연인'관계가 될 수 없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기도에서 알리사가 말하잖는가. '둘이서 나란히 걸을 수도 없을 만큼 좁은 길이옵니다.'.  나란히도 걸을 수 없는 사이. 그게 무슨 연인인가. 그렇게 알리사는 이해할 수 없는 신앙심으로 홀로 여행을 떠나버리고, 얼마 안가 병을 얻어서 죽는다.

 여기까지 읽으니까, 참으로 심란하고 이해할 수가 없더라. 그런데 소설에는 '알리사의 일기' 부분만을 따로 싣는다. 알리사의 시점에서 바라본 이야기는 알리사가 지녔던 마음을 속속들이 보여준다. 일기장에서 가장 눈에 띄는 모습은 '이해할 수 없는 신앙심'에서, '어느 정도 이해 가능한 인간의 나약한 마음'으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그렇다. 사실, 알리사는 무척이나 '제롬'은 '연인'으로서 사랑했었다. 그 뿐인가, 쥘리에트를 위한 행동을 '희생'이라 스스로 여기면서, 그 희생의 가치가 바래거나, 인정하지 않을 때에 속으로 가슴 졸였던 것이다. 그런 흔들림 속에서도 자신이 믿고 있는 신앙을 향해 한걸음 한걸음씩 나아갔던 게, 알리사의 참모습이다. 아아, 얼마나 인간적인가. 신의 가르침을 그대로 따르는 것은 천사이지 인간은 아니다. 인간은 언제나 번뇌하기 마려인 것을. 그러한 가운데서도 알리사의 '의지'는 대단하였고, 결국 제롬조차 그 마음을 모를 정도로 속였던 것이다.

 미안하지만, 나는 그러한 알리사의 '정신'. 하나도 칭찬하고 싶지 않다. 알리사가 그토록 지키고자 했던 '성스러움', '신으로부터의 의무'는 과연 '인간의 행복'보다 중요한 것일까? 제롬은 말했다. "너 없이는 그곳에 이르지 못해." 행복하지 않는 인간이 다가가는 성스러움은 아름다울 수 있는 걸까. 나는 사소하고 그리 대단치 않는 한 마리 '인간'이란 동물이 느끼는 행복감, 그게 더 소중하다. 그 의지가 절정에 다른 알리사의 일기장에 알리사는 오히려 '행복'을 두려워 하는 것 같았다. 마치, 행복한 인간은 성스러울 수 없다고 믿는 듯이. 나는 그러한 삶을 선택한 알리사는 이해할 수 없었다. 제길, 앙드레 지드는 그토록 성스러움을 추구했던 알리사가 후에 천국으로 갔다는 한 줄 쓰지 않았단 말이다!


그리 대단치 않는 행복감, 그게 사랑이 아니더냐.


 영원한 사랑을 갈구한 순정파 제롬과 성스러움을 추구한 알리사. 이 둘은 사랑에 대해 큰 오해를 갖고 있었던 거다.(난, 그렇게 생각한다.) 먼저, 제롬의 마음. 아, 어찌 그 마음을 모를 수 있으리. 첫사랑을 향한 그 끝없는 마음을. 그러나 자신의 첫사랑만, 영원하리라는 법, 당연히 없다. 알리사와의 관계에서 불안함을 느꼈던 순간부터, 제롬은 끝없이 믿고 싶은 것만 믿으면서 자위했다. 인정하기 싫겠지, 그 모든 것을. 그러나 때론 보고 싶지 않은 것도 봐야 할 때가 있다. 그게 어른이다. 또한 첫사랑만이 사랑이 아니다. 알리사와의 사랑이 '대단해'보여서 다른 사랑이 눈에 차지 않을 수 있지만, 그건 착각이다. 알리사와의 행복한 기억, 그건 그리 대단한게 아니다.

 알리사의 경우도 마찬가지. 성스러움이라는 인간이 이르기 어려운 경지에 그토록 다다르려는 이유가 무엇인가. 왜 그렇게 제롬을 위한다는 이유로, 자신도 마음이 아파하면서까지 제롬을 멀리하는가. 알리사는 '제롬과 함께'있을 때, '성스러운 경지' 이르지 못할까 두려운 것이다. 아니, 사랑이 뭐 그리 대단한 거라고…. 생각해봐라. 연인관계가 언제나 뜨겁고 격동적일 수만 있던가, 그 뜨거움을 식혀줄 때도 필요한 거지. 수많은 성인도 결국은 인간이란 말이다.

 제길, 도대체 그들은 무엇을 기대한 것일까. 어렸을 적, 서로 함께 밥을 먹고, 울기도 하고, 일을 했던 기억들. 그처럼 그리 대단치 않은 것에 대한 행복감. 그게 사랑이 아니더냐. 영원하지도 않아도 좋고, 위대하지 않아도 좋다. 그 모든 것, 완벽함을 얻지 못해도 행복할 수 있는 것. 바로, 이 점이 오늘도 많은 이들이 고백을 하는 이유가 아닐까.




추신.

 내가 이 책을 읽으며 그토록 흔들렸던 이유. 뭐겠나. 내 안에 제롬과 알리사가 있었기 때문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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