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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5/13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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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만원
세대 - ![]() 우석훈.박권일 지음/레디앙 |
우석훈 씨가 쓴 88만원 세대는 10대와 20대에게 들려주는 ‘2000년대’ 20대가 처한 현실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 이야기인 ‘당사자’들에게 지금 겪고 있는, 곧 겪게 될 현실을 알려주고 그들의 미래, 그리고 한국 사회의 미래를 위해 ‘무언가’를 하지 않으면 ‘위험’할 거라며 한국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경고’하고 있다. 그에 대해 자세히 살피기 전에, 2000년대 한국 사회가 20대를 바라보는 시선이 어떠한지 잠시 주위 풍경 3가지를 살펴보자.
풍경 하나. 10대가 20대를 바라보는 시선
현재, 한국의 대다수의 10대는 (아직도)입시 공부에 시달리고 있다. 그런 그들은 20대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잠시, 최근 10대의 변화를 살펴보자. 1990년대와 2000년대의 10대는 달라졌다. 1990년대 한국의 10대들의 ‘골칫거리’였다. 그들은 기존의 룰을 깨부수기 시작했다. 더 이상 그들을 답답하게 옥죄고 있는 것에 대해 참고만 있지는 않을 것이라는 ‘저항’이였다. 교실 붕괴, 청소년 문제가 부각되기도 하고, 대안 학교와 새롭고 다양한 문화에 대한 이야기가 사회 전반을 흐르고 있었다. 그런데 최근 10대들은 그전의 모습들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취하고 있다. 오히려 입시 제도에 그 누구 보다 잘 적응하고, 반항보다는 순종적인 모습으로 돌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에 대해 『다시, 마을이다』에서 조한혜정 교수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청소년 무기력증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요? 아마도 가장 큰 원인은 그들에게 모델이 없다는 점일 겁니다. 열심히 공부해서 일류 대학을 나와도 취업을 하지 못하는 형과 언니들을 보면서 이들은 지레 겁을 먹고 있습니다. 점점 자신감을 잃어 가면서 이들은 스스로 삶을 개척하기보다 어딘가 기댈 곳을 찾는 데 급급합니다. 학교라는 ‘제도’에 남아 있으면서 부모에게 ‘순종’하는 것이 그나마 안전하다는 결론을 내린 아이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그랬다. 언젠가 ‘20대’가 될 ‘10대’는 더는 20대에서 ‘모델’을 찾지 못했다. 자신이 되고 싶은 20대의 모습을, 어른의 모습을 잃어버린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 학벌에, 경력에, 취업에 모든 것을 걸어도 ‘사회적 약자’ 그 이상 되지 못하는 20대의 모습을 보면서 10대는 더는 ‘20대’가 되기를 꿈꾸지 않는다. 다시 말해, 독자적인 ‘20대 어른’이 되는 것보다 ‘언제까지나 순종하고 보호받는 10대’로의 선택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10대, 그들에게 있어서 20대는 ‘조금 더 지연시키고 멀리하고 싶은 것’이 된 것이다.
풍경 둘. 20대가 20대를 바라보는 시선
매스컴과 어른들이 지겹도록 외치는 소리가 있다. ‘무한 경쟁의 시대’. 그게 왜 온 건지, 정말 좋은 건지에 대한 생각은 접어두고 당장 ‘무한 경쟁의 시대에 적응’하라고 20대는 떠밀려졌다. 과거 20대의 에너지가 넘쳤던 대학사회는 이제는 볼 수가 없다. 그동안 지겹도록 한 ‘입시 교육’을 넘어서는 무언가 ‘새로운 학문 탐구’와 ‘질문’은 들리지 않는다. 지금껏 ‘입시’를 위해 달려온 그들에게 대학과 사회는 ‘주문’한다. 이제, ‘취업’을 향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릴 때라고….
‘무한 경쟁’의 원리를 선택한 사회는 20대가 20대를 ‘경쟁자’로 보게 만들고 있다. 좁은 취업 전선에서 나의 직장을 가로챌 수 있는 ‘잠재적 경쟁자’로써 말이다. 집단 중심의 포디즘의 시대가 지나고 개인주의 성향으로 변화 된 20대는 안타깝게도 ‘개인주의로써의 연대’의 방법을 생각해내지 못했다. 서로 다름을 존중하고 다양한 색깔들을 아름답게 엮는 대신, 그들은 뿔뿔이 흩어져 버렸다. 과거 집단중심의 몇몇 그룹을 제외한 이들은 모두 ‘도서관’, ‘독서실’, ‘고시 학원’, ‘유학’ 등으로 흩어진 것이다.
무한 경쟁이라는 시대 속에서 이루어진 20대의 파편화 현상은 서로를 ‘경쟁자’로만 이해하게 만들었다. 또한 그들은 “20대는 게으르고 나태하며 어리석고 멍청하다”라는 이야기에 어느새 ‘수긍’하면서 서로 ‘경멸’하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이제 그들에게 있어, ‘소통’과 ‘믿음’이라는 단어는 이해할 수 없는 ‘차원’의 이야기가 되어버린 걸까.
풍경 셋. 주류 어른들이 20대를 바라보는 시선
이 시선은 386의 40대든, 박정희를 좋아하는 50대든 다르지 않다. 자신을 좌파라고 하든, 우파라고 하든 시선의 형태는 같은 것이다. 그건 “20대는 찌질하다.”라는 시선이다. 소위 자신을 좌파라고 생각하는 이들은 ‘20대의 탈정치성’을 비판한다. “2000년대, 20대는 『자본론』을 읽지 않고, 사회에 고민하고 토론하지 않는다. 그저 ‘소비’를 즐길 뿐이다.”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우파 또한 다르지 않다. 각종 기업에서는 대학생들을 “재교육이 필요할 만큼 할 줄 아는 게 전혀 없다”, “세계화 시대에 어울리는 인재가 없다.”라고 한탄한다. 그랬다. 한국 사회의 어른들은 “20대가 만들어갈 미래”가 걱정된다. 단군 이래, 그토록 게으르고 멍청하고 무기력한 이들은 없었기에! 정말 그러한가?
이 3가지 풍경은 ‘한국 사회’가 20대를 바라보는 시선을 대변한다고 할 수 있다. 하나 같이 “쯧쯧쯧…….”하는 소리가 들린다. 그게 자신의 불안한 ‘미래’가 될까 걱정하든, 무한 경쟁에서 적응하지 못하는 또래에 대한 ‘한심하다는’ 생각이든, 자신의 입장에 따라 이유는 다르지만 어쨌든 ‘멍청하다’는 생각이든지간에 말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석훈 씨는 사회가 바라보는 시선이 아닌, 20대가 처한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려고 한다. 2000년대 한국의 20대는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
성인이 되는 시기가 늦춰진 20대
『88만원 세대』에서 우석훈 씨는 ‘지체된 성장, 늦은 데뷔’라는 말을 쓰고 있다. 그랬다. 2000년대 한국의 20대는 ‘성인식’과 ‘성인이 되는 시기’의 괴리감이 커지고 있다. 책의 첫장을 여는 ‘동거’의 문제부터 시작된 ‘독립’ 문제는 철저히 ‘경제’적인 접근으로 다가간다. 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서 ‘동거’하며 독립하며 살아가지 못하는가? (이 질문의 방점은 ‘독립’이다.) 그 질문에 대해 고민하면, ‘20대가 처한 사회․경제적 현실’을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주거비’, ‘대학등록금’, ‘알바 시장’, ‘청년 실업’ 이런 키워드가 등장하게 된다. 20대가 부모를 떠나서 혼자 살 수 있을 만큼, 주거비가 책정되고 있는가? 또한 스스로 대학 등록금을 낼 수 있을 정도로 등록금의 크기가 정해졌는가? 이 모든 생활비용을 벌기에는 ‘청년 실업’은 막강하고, ‘알바 시장’은 극단적 착취가 이루어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의 20대가 ‘독립’하며 건전한 ‘성인’으로 산다는 것을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에 대해 우석훈 씨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한국의 경우, 스무 살에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과 같이 살겠다고 생각하는 순간 지옥이 펼쳐질 것이다. 절대로 독립을 인정하지도 않고, 독립할 수 있는 경제적 질서와 제도를 만들려고 하지 않는 한국형 청소년 시스템은 부자 부모를 둔 소수의 청소년을 제외한 나머지는 스스로 독립을 하여서는 정상적인 시민으로 전환되기가 매우 어렵다.” - 『88만원 세대』44쪽
결국, 2000년대 20대는 ‘나약하고 무기력하기에’ 독립을 못하는 게 아니라, 사회․경제적인 구조 속에서 ‘독립’을 지연당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당장 ‘혼자 살아가기도’ 벅찬 상황에서 그들은 ‘고소득과 안정적인 직장’에 목숨을 건다. 학점을 따고, 경력을 쌓고, 취업 전선에 뛰어든다. 왜? 그러지 않으면 정상적인 ‘성인’으로서 살아가기가 힘드니까……. 쥐꼬리만도 안 되는 월급보다 작은 알바비를 받으면서 스스로 ‘주거비’과 ‘학습비’ 그리고 ‘생활비’를 감당할 수 있을까? 독립하지 못하는 20대, 그런데 20대의 현실은 이것만이 아니다. 게다가 바로, 아래에서 살펴볼 20대의 현실은 ‘한국 사회’의 미래와도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승자독식의 획일화에 짓눌린 20대
한국 사회는 20대에게 이런 말을 한다. “아니꼬우면 이기든가?” 무한 경쟁, 그리고 승자독식의 사회 구조에서 ‘유리한 이’는 더욱 유리해지고 ‘불리한 이’는 더욱 불리해진다. 칠전팔기라는 말처럼,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서는 이에게 희망을 주는 사회가 아니다. 이미 오래전 ‘입시 게임’부터 시작된 이 ‘무한 경쟁’은 단 한번만 삐끗해서 넘어지는 순간 그대로 ‘게임 오버’다.
게다가 그 ‘경쟁’은 ‘크고 강한 자’만이 이기도록 구조화되어있다. 말 그대로 ‘공룡’만이 지배하는 사회인 것이다. 그렇기에 최근 한국 경제에서 보여주는 ‘대기업’은 잘나가는데, ‘중소기업’은 망하는 모습과 ‘프렌차이점과 대형할인마트’는 사람으로 넘쳐나는데, ‘자영업’과 ‘지역경제’는 죽어버리는 모습이 등장하게 된 것이다. 이런 구조 속에서 20대는 더는 사회에 대한 ‘도전’과 ‘고민’과 ‘톡톡 튀는 아이디어’를 내뿜지 않는다. ‘크고 강한자’의 구조속에 들어가기 위해, ‘획일화’되는 것이다. 어차피, ‘적자생존’의 사회인데 ‘크고 강한 공룡’들이 지배하는 사회가 나쁘지 않느냐고 생각할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그에 대해 『88만원 세대』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적자생존을 강요하지만, 사실 생태계에서는 살아있는 모든 것들은 나름대로의 기능을 가지고 살아가게 된다. '적절하다는 것'이 반드시 강한 것을 의미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생태계는 다양성을 통해서 '안정성'이라고 부를 수 있는 복원성을 만들어내는데, 경제시스템도 마찬가지이고, 그래서 21세기 이후에 국제적으로 문화 다양성과 산업 다양성이 중요한 화두가 된 셈이다. 한국 경제는 지금 다양성이라는 가장 큰 자산을 스스로 파괴하는 중이다. 그 파괴의 현장마다 파괴된 집안의 비극과 가장들의 비극이 하나씩 생산된다. 이걸 한국 경제판 '공룡의 비극'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 『88만원 세대』245쪽
결국은 한국 사회의 구조 속에서 점점 ‘획일화’되고 있는 20대는, 한국 사회에 있어서 큰 위험인 것이다. 사실, 이것은 기업들조차 알고 있다. 그래서 항상 말하지 않는가. “20대는 다 똑같다!” 이렇게 ‘대기업’이 투덜거려도, ‘중소기업’을 망가뜨리는 구조 속에 배치되어 있는 한 20대는 획일화 증상은 더욱 심화될 것이다. 그와 동시에 20대의 생활고는 심해질 테고, 한국 사회의 미래도 ‘적응하지 못하는 미래’가 될지도 모른다는 암울함이 조금씩 깃들 테다. 그래서 『88만원 세대』라는 책을 사회에 내놓고 다같이 ‘고민’하고 ‘행동’하자고 책의 저자(우석훈, 박권일)는 주장하는 것이다.
20대는 사회의 골칫덩어리들이 아니라 한국 사회 문제를 푸는 열쇠이다!
2001년 문을 연 ‘하자작업장학교’는 슬로건이 ‘10대는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자원이다’였다. 그리고 그 ‘10대’가 ‘20’대가 되는 현재, “20대는 사회의 골칫덩어리들이 아니라 한국 사회 문제를 푸는 열쇠이다!”라고 주장해야할 시점이다. 물론, 이 목소리를 외치는 주체는 ‘10대와 20대’이다. 사회 문제가 직접적으로 겪는 당사자들이 스스로 외쳐야만 꼬인 실타래를 풀어나갈 수 있는 것이다.
우선, 2000년대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20대들은 언제까지나 ‘한국사회’가 그들을 바라보는 시선에 부끄러워하며 의기소침해서는 안 된다. 분명, 구조적인 문제임에도 그저 한 개인, 한 세대의 ‘무기력과 나태함’으로 포장하려는 것은 당장의 ‘안락’을 위해서 미래를 위한 ‘고민’도 하지 않겠다는 ‘어른들과 10대, 20대의 무책임함’이다.
왜? 10대와 20대도 무책임한 것이냐? 간단하다. 구조의 문제가 존재함에도 그것을 무시하고 순응하는 것은 나와 다른 이들을 더 나은 ‘사회’로 바꿀 수 있는 기회를 저버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구조 속에서는 ‘10대’도 ‘20대’도, 그리고 ‘어른’들 조차 미래를 보장받을 수 없다. 물론, 가장 먼저 ‘잘못된 구조’속에서 희생양이 되는 것은 현재를 살아가는 20대와 10대다. 10대 그리고 20대들은 여태껏 ‘게임’을 이기는 법을 ‘무한 경쟁’이라고만 배웠다. 그러나 지금 그들이 겪는 문제는 ‘협력과 연대’라는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방식의 해법을 필요로 한다. 10대와 20대 사이의 ‘연대’ 뿐만이 아니라, 다른 한국 사회의 구성원들과의 ‘협력 게임’이 필요한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그들 스스로 뿐만 아니라, 한국 사회의 미래를 위해서도 매우 중요한 문제다. 한국 사회의 모든 세대, 심지어 자기 세대에서조차 천대받고 있는 20대가 한국 사회에 끔찍하게 다가오는 문제를 풀 수 있는 ‘열쇠’라는 것은 역설적인 진실이다. 『88만원 세대』는 그들을 한국사회처럼 천대하는 대신, 굳게 잠긴 한국사회문제 자물쇠의 ‘열쇠’가 되기를 권한다. 선택은 스스로의 몫일 테다. 마지막으로 책『88만원 세대』가 ‘88만원 세대’에게 하고 싶은 말을 정확히 짚은 책의 일부분을 소개하면서 글을 마친다.
“지금 우리나라의 88만원 세대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그들만의 바리케이드와 그들의 한 발이라도 자신의 삶을 개선시키기 위해 필요한 짱돌이지, 토플이나 GRE 점수는 결코 아니다. 엄페물 없이 은페되어 있는 20대가 하나의 주체로서 목소리를 내는 과정, 이 흐름은 개별적으로 입사 시험 보면서 '단단한 직장'을 잡는 과정과는 조금 다르다. 평균이라는 통계학적 개념이 적용되고 사회적 구조라는 경제사회적 현실이 존재하고, 제도라는 역사적이며 고고학적인 공유 자산의 영역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사회 특히, 기성세대가 자신들을 지키는 바리케이드를 20대와 공유하지 않으려고 하는 현 시점, 20대도 어떤식으로든지 더 사회적이고 정치적으로 자신들의 목소리를 가지려고 할 필요가 있고, 그들의 요구가 조금이라도 새로운 반적의 계기를 찾을 수 있도록 작은 '짱돌'을 사용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러한 흐름이 발생하지 않으면 20대들은 한 명씩 자신의 골방에 '은페'되어 고립되고, 파편처럼 공격받으며 오히려 기성세대들의 희생양이 될 가능성이 높다.
"우리가 이렇게 못 살게 된 것은 다 20대들이 게으르고, 부모들의 뼈골을 빼먹기 때문이다."
이런 사이비 과학의 주장들이 이론화되고 주류 담론화되면서 20대를 희생양으로 몰아나가는 흐름 앞에서 도대체 바리케이드와 짱돌 없이 어떻게 최소한의 자신들의 자존심과 존재감이라도 지킬 수 있겠는가? 개인적으로 지독한 우울증 속에서 경제적 소수자로 전락할 것인가 아니면 이 비정규직 일반화를 전면에 내세운 세대 착취의 경향을 조금이라도 저지할 것인가? 지금 바로 그 전환점에 우리가 서 있는 셈이다.” 『88만원 세대』291쪽
* 본 글은 '사회과학입문' 과제로 제출했음을 알려드립니다.-_-;
조희연쌤, 이건 결코 복사해서 붙여놓은 게 아니에요……. ;ㅅ;
덧. 별점은 제 마음대로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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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4/30 1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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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미안
- ![]() 헤르만 헤세 지음, 정소진 옮김, 임영태 감수/리베르 |
성장에 대한 이야기, 『데미안』
헤르만 헤세의『데미안』은 성장에 대한 이야기야. '성장'이라고 하니, 머릿속에서는 그동안에 드라마와 영화 속에서 봤었던 '성장 공식'이 떠오르지 않아? (특히, 소년만화물에서 지겹게도 반복되는 레퍼토리지.) '이제는 제법 '고전 소설' 쯤에 들어가는 『데미안』이라고 하지만 과연 다를 게 있을까?'라는 의심쩍은 눈초리는 잠시 걷고 내 이야기를 들어봐. :) 성장 이야기가 으레 그렇듯, 『데미안』의 주인공 '싱클레어'는 순수하고 연약한 존재야. 쉽게 말해, 온실 속의 화초 혹은 마치, '거대한 모험'의 소용돌이에 빨려 들어가기 직전의 만화 주인공 같은 거야. 그리고 그건, 바로 우리가 '가정의 따뜻한 품 안'에서 벗어나기 직전의 모습이기도 하지.
따뜻한 세계 속에서 안락했던 싱클레어, 추악한 세계에 발을 빠뜨리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 싱클레어는 이제 '낯선 곳으로의 모험'으로 성장에 대한 발걸음을 내디뎌. 물론, 이것은 '쉽고 편하고 마냥 행복하기만 한' 것은 결코 아니지. 싱클레어는 '프란츠 크로머'라는, 우리가 어렸을 적에 흔히 보았던 불량학생'에 의해 '낯선 세상'에 발을 빠뜨리게 돼. 싱클레어는 지금,(이미 많이 커버린 우리에게는 너무나 '사소한 일'에(간단히 말하면, 거짓말 혹은 거짓된 맹세인 거지.) 크로머에 협박당하고 괴롭힘을 당하면서 '낯선 세계, 추악한 세계'에 조금씩 다가가게 돼. 그러면서 점점 그동안의 '따뜻한 세계'로부터 멀어지는 자신을 감당하지 못해 괴로워하지.
지금 보면 참으로 '바보'스럽지만, 싱클레어의 그 마음에 공감이 가는 것은 우리의 어렸을 적 모습 또한 마찬가지였기 때문일꺼야. 사소한 일에도 큰 죄를 지어서 벌을 받고 비난을 받을까 조마조마하며 떨었던 '어렸을 적'의 기억이 다들 있지? 그때는 지금보다 '순수'했기에 그렇게 아파할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싶어. 이제는 어지간한 일이 아니면 반응이 없을 정도로 무뎌진 양심이지만…….
어쨌든, 이렇게 '낯선 세계'와 만나고 조금씩 변해가는 자신에(금지에 대한 욕망처럼, 싱클레어는 '낯선 세계'가 마냥 싫은 게 아니었던 거지.) 괴로워하는 싱클레어는 '데미안'이라는 구원자를 만나게 되어서, 크로머의 괴롭힘으로부터 벗어나지. 그런데 크로머로부터 벗어나게 해 준 데미안은 이전의 '따뜻한 세계'의 사람이 아니었어. 데미안 덕분에 다시, 마음껏 '따뜻한 세계' 속에 파묻혀서 살아갈 수 있었지만, 정작 데미안은 '따뜻한 세계 혹은 기존의 세계'와는 다른 이야기를 해. 그렇기에 싱클레어는 데미안을 동경하면서, 그의 세계에는 다가가려 하지 않는 모습을 보이지. 그러다가 데미안이 여행을 떠나면서 서로 헤어지게 되지.
사랑받는 소년에서, 세상에 조소를 내뿜는 탕아가 된 싱클레어
크로머로로 인해, 낯선 세계에 발을 담가보았던 싱클레어는 그 '매혹적인 모습'을 잊지 못해. 그동안에 자신이 있었던 '따뜻하고 거룩하며 안정적인 세계'에서 조금씩 '낯선 세계 혹은 어둠의 세계'로 다가가지. 그리고는 어느새, 세상에 대해 냉담하고 감정이 무뎌진 인간이 되는 거야. 그렇게 변하는 자신을 싱클레어는 이렇게 말해.
"소년의 사랑스러움은 내게서 완전히 사라졌다. 사람들이 나를 별로 사랑할 수 없다는 것을 느꼈으며, 스스로도 결코 사랑하지 않았다."
어느샌가, '따뜻한 세계'의 일원에서 '차가운 세계'의 일원으로 바뀐 싱클레어. 그는 점점 더 '따뜻한 세계'에서 멀어지며 생활을 하게 돼. 누구보다 술을 잘 마시고, 각종 음담패설을 내뱉고, 세상에 대한 조소를 내뿜는 탕아가 된 거야. 학교에서 쫓겨나기 직전까지의 행동을 보이며, 소위 또래들의 '영웅'이 되며 살아가지. 마치, 어느 만화에서 보았던, 냉소적으로 세상을 보며, 비웃는 '간지나는 캐릭터'처럼. (오! 옛날에는 정말 멋지다고 생각했었는데!)
그렇게 살아가는 싱클레어는 우연히 '데미안'을 만나게 돼. 오랜만에 데미안을 만나, 자신이 이제 '어리숙한 싱클레어'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이라고 하는 듯이, 술집에 가지. 그러면서 자신은 이제 술도 마음껏 마시며 호탕하게 산다는 것을 보여주지. 여기서 데미안은 이렇게 한마디 하고 사라져.
"네가 무슨 목적으로 잔을 비우고 있는지에 대해서 너와 나 둘 다 모르고 있단 말이야.(…)이걸 알아야 할 것 같아. 우리들 내부에는 모든 것을 알고, 원하는 더 잘 해내는 존재가 있단 말이야. 그 사실을 깨닫는 것은 지극히 유익한 일이지."
데미안은 '탕아적 삶'은 정말 싱클레어 자신이 원하는 삶이 아니라는 것을 일러준 것이지. 우리 주변에도 '탕아적인 모습을 멋있다고(간지나잖뉘?-_+ㅋ) 생각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참으로 많아. 마치, 세상에 대해 모든 것을 아는 듯이 행동하며 세상을 냉소적으로만 바라보는 태도를 지닌 수많은 이들! 그들은 정작 '자유롭고 호탕하다'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자신의 내면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고, 냉소적으로 생각하는 세상을 더욱 냉소적으로 만드는 데 보태고 있을 뿐이야.
자, 다시 『데미안』으로 돌아가 보자. 우리의 주인공인 '싱클레어'! 그는 이제, '낯선 모험의 세계에 빠지고, 그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모습'까지 왔어. 오! 이제는 각종 '성장 이야기 공식'처럼 다시 '따뜻하고 안락한 세계'로 돌아갈 차례만이 남은 걸까? 흔히, 영화 속에서 볼 수 있는 "그 모든 것은 꿈이었다'라는 방식처럼 말이야.
천사인 동시에 악마인 신, 아프락사스
만약, '따뜻하고 안락했던 세계'로의 귀환이 성장이라면, 고작 성장이라는 것은 '악마의 유혹'을 꿋꿋이 이겨내서 도로 아름다운 세계로 돌아가는 것에 지나지 않지. 그런데 『데미안』의 저자 헤르만 헤세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어. 사실, 싱클레어는 탕아인 상태에서 데미안을 만나기 전에, 베아트리체라고 이름 붙인 한 여인을 만나게 돼. 직접 만나는 것은 아니고, 바라보기만 하는 건데 그녀는 '과거의 데미안'에 살았던 따뜻하고 안락한 세계의 사람이야. 그녀를 보며 데미안은 다시 되돌아가고 싶어하지. 그러던 와중에 데미안을 만나게 된 거야. 베아트리체에 대한 성스러움에 대한 갈망을 품고 있던 탕아였던 싱클레어는 데미안을 만나고 나서 꿈에서 '새'에 관한 꿈을 꾸고 그것을 그리고 나서 데미안에게 보내지. 그리고 데미안에게 답변이 오는 데, 바로 그 유명한 문구가 여기서 나오지.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새의 세계다.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새는 신을 향해 날아간다. 신의 이름은 아프락사스이다."
이런 쪽지를 받은 후에 수업 중에 아프락사스는 '신적인 것과 악마적인 것을 결합하는 어떤 신성의 이름'이라는 말을 듣고, 그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하지. 그동안 싱클레어는 '성스러운 것'에 대한 갈망도 있지만, '성스럽지 못한 것'에 대한 갈망 또한 여전히 갖고 있었거든. 그에 대한 고민이 '아프락사스'를 통해 표면화 된 거지. 또한, 싱클레어는 '피스토리우스'라는 음악가를 만나고, 그를 통해 보다 '아프락사스'를 잘 알게 돼. 그렇게 『데미안』의 이야기는 전개되고 나중에는 다시 데미안과의 재회하게 되지. 그리고는 이제 싱클레어는 데미안처럼 '성스러운 세계'나 '추악한 세계'가 아닌, '아프락사스의 세계'에 속하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을 의미하면서 이야기는 끝을 맺지.(더 자세한 이야기를 알고 싶다면 직접 읽어보시라! :-p )
아프락사스, 성장의 진정한 의미
그래, 전형적인 '성장 이야기'인 『데미안』은 '따뜻한 나라도 되돌아가서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았습니다!^^'라고 말하지 않아. 바로, 여기서 『데미안』에 담긴 성장의 진정한 의미를 알 수 있어. 그건 바로, '아프락삭스'야. 우리는 '성장'하면서 세상이 '따뜻한 자궁' 혹은 '아늑한 가정'같지만은 않다는 것을 깨닫지. 분명히 세상의 절반은 '아름다운 세계'일지도 모르겠지만 또 다른 절반은 '아름답게 보이지 않는 세계'가 분명히 존재하지.
그렇다고 해서 '아름답게 보이지 않는 것'을 모두 부정할 필요도 없고, '아름답게 보이는 세계'가 허구라고 주장할 필요도 없지. 그 모든 것이 하나로 이어져서 '세계'를 이루는 것이고, 그 세계를 상징하는 게 '아프락삭스'인 거야. 그런데 아프락삭스는 '신 혹은 악마' 같은 또 다른 신적인 기준이며 권위일까? 그에 대해서는 『데미안』에 나오는 3개의 구절을 통해 대신 대답해보려고 해.
하나.
"우리는 누구나 자기 스스로 찾아내야만 해. 과연 무엇이 허용의 범주에 들고 무엇이 금지의 영역에 포함되는지, 무엇을 스스로 금지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말이야."
둘.
"자신과 남들을 비교해서는 안 돼. 자연이 자네를 박쥐로 만들어 놓았다면, 자신을 타조로 만들려고 해서는 안 돼. 인간은 더러 자신을 특별하다고 생각하고, 다른 사람들과 다른 길을 가고 있다고 자신을 나무라기도 하지. 하지만 그런 일은 그만두어야 하네. 불을 들여다보고, 구름을 바라볼 때 어떤 예감이 떠오르고 자네 영혼 속에서 목소리가 들려오거든, 자신을 그 목소리에 맡기고 아무것도 묻지 말도록 하게. 그것이 선생님이나 아버님 혹은 하느님의 마음에 들까 하는 그런 물음이 자신을 망치는 거야."
셋.
"각성된 인간에게는 한 가지 의무, 즉 자기 자신을 찾고 자신 속에서 확고해지는 것, 자신의 길을 앞으로 더듬어 나가는 것 외에는 아무런 의무도 없다"
자, 이제 아프락삭스라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어디에 있는지 알겠어? 『데미안』에 나오는 아프락삭스는 자신의 '내면'에 있어. 그리고 그 내면의 목소리를 잘 듣고 '자기 자신'으로 되어가는 것을 의미하지. '성장'이라는 것은 바로 그런 것을 뜻해. 어렸을 적에는 '따뜻한 세계'에 묻혀 살면서 그저 그대로 살아갔다면, '낯선 세계'를 만나고 여러 '모험'을 통해서, '자신만의 기준'을 찾고 '자기 내면의 목소리'를 들으며 '자신'이 되려고 살아가는 거지. 나는 이것이 『데미안』에 담긴 성장의 의미라고 생각해. 그리고 헤르만 헤세는 그 '성장'을 우리에게 건네고 있어. "어때? 이제 세계를 깨뜨리고 너의 신을 향해 날아가지 않을래?"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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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3/31 11:38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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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독일처
- ![]() 정태춘 지음/실천문학사 |
가수 정태춘, 시를 쓰다.
이 시집을 낸 사람은 가수, 정태춘 씨야. 사실, 나는 그에 대해 잘은 몰라. 그가 포크가수라는 것, '시인의 마을'이라는 노래와 '아 대한민국'이라는 노래를 불렀다는 것을 아는 정도지. 게다가 난 그 노래를 들어본 적도 거의 없어. 다만, 그가 민중가요 같은 노래를 불렀고, 그렇기에 그 노래에 담긴 생각과 감성이 시에도 고스란히 담겨 있지 않을까 추측할 뿐이었지. 가수 정태춘, 그는 어떤 시를 썼을까?
세상을 보는 날카로운 눈
역시, '아 대한민국'의 노래를 불렀던 정태춘 씨 답게, 세상을 날이 선 채로 바라보고 있었지. 시집 속 시에서 제목 위에 조그맣게 쓰여있는 '권력 1' 혹은 '권력 2'가 쓰여있는 권력 시리즈는 세상을 보는 그의 시선을 알 수 있어. 소수 권력자에 의해 많은 이들이 고통받는 세상을 바라보는 그의 눈빛. 게다가 시는 '날 것' 그대로 쓰였어. 어떤 기교를 쓰기보단, 솔직하게 자신의 마음을 적어 내렸다고나 할까. 그렇기에 시를 읽기가 불편할 수도 있지. 하지만, 그 '날카로운 시선'에 담긴 마음은 분노만이 아니야. 슬픔이, 고통받는 민중에 대한 연민이 느껴져. 마치, '왜 그렇게 세상은 사람들을 못되게 구는 걸까?' 라는 말을 하는 것처럼. 이렇듯 현실을 날카롭게 풍자한 시에는 세상에 대한 분노와 민중에 대한 연민이 공존하지. 그런데 이게 전부일까? 그렇지 않아.
외로운 나그네의 삶
세상을 날카롭게 본다는 것, 세상과 불화하면서 산다는 것은 결코 편한 삶이 아니지. 분노하며 싸우는 것도, 연민을 가지고 슬퍼하는 것도 힘든 일이야. 그렇게 오랫동안 살아오면서 때로는 쉬고 싶고, 종종 자신이 홀로인듯한 외로움도 느끼겠지. 그 마음 또한 이 시집에 담겨있어. 여전히 추악한 세상에 대해서 자신에 대해 무력감을 느끼기도 하고(허무하단 말야), 함께했던 많은 이들에게서 상처를 받기도 하지(악수). 언제나 '날카로운 모습'만을 볼 줄 알았던 나는 그 모습이 인상에 깊게 남았어. '인간 정태춘' 씨를 만나본 느낌이랄까.
꿈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가다.
지치고 외로운 나그네의 삶. 그럼에도, 정태춘 씨는 자신의 꿈을 향해 의연히 걸어갈 거라고 다짐해. 이 시집의 제목으로 쓰인 '노독일처'라는 시를 보면, '노독일처'라는 중국집에서 자신의 꿈, 이상향을 발견하고 앞으로 그것을 보려고 계속 오겠노라고 자신에게 말하지. 그동안 싸워왔던 이유인 자신의 꿈. 그곳으로 가는 길이 때로는 지치고 때로는 외롭더라도 그는 걸어갈 거야. 그러면서 또 세상에 대해 분노를 터뜨리고 민중이 받는 고통에 대해 슬퍼하겠지. 언젠가는 그러한 모습이 사라질 세상을 위해서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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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3/01 21:48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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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형수
042 1 - ![]() 코테가와 유아 지음/학산문화사(만화) |
사형수는 사람이 아닐까?
『사형수042』는 한 실험에 참여하는 사형수에 대한 이야기야. 그 실험은 '사형수'의 머리에 화를 내거나 폭력을 쓰면 폭발하는 칩을 심고 일상적인 생활을 하며 봉사하는 삶을 사는 거지. 그래서 첫 실험 대상자로 도박 싸움터에서 7명이나 살해한 '타지마 료헤이'가 정해지고 그는 학교에서 화초를 기르거나, 청소 등의 봉사를 하게 돼. 참, 설정이 만화 같지? 게다가 설정뿐만이 아니라 내용은 더욱 만화의 판타지가 가득해.
학교에서 봉사생활을 하는 동안, 타지마 료헤이는 어렸을 적의 순수한 감정을 하나하나 찾아가지. 게다가 학교의 학생 중 한 명이 자신을 좋아하기도 하고, 자신이 다른 사람에 좋아하는 감정을 품기도 하지. 사형수가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고? 혹은 사형수를 어떻게 좋아할 수 있느냐고? 여기서 질문을 해보자. 사형수는 사람이 아닐까? 이 만화를 그린 '코테가와 유아'는 사형수는 '한 사람의 생명이다.'라고 믿는 듯해. 그리고 그 믿음이, 그 시선이 만화에 따뜻하게 묻어있어.
사형수, 그리고 사람에 대한 이야기
이 만화를 보면서 사형제도의 필요성 혹은 살인자의 잔인성 등에 대해 말하면서 "판타지에 불과해"라고 딴죽을 거는 건 불필요해. 이미, 작가가 단행본에서 밝혔듯이 '현장 조사'는 단, 한 번도 하지 않았으니까.^^; 『사형수042』만화를 그리려고 사형수에 대해 알아보고, 살인에 대해 알아보고, 사형제도에 대해 알아본 게 아니란 거지. 물론, 평소에 생각 정도는 해본 적 있었을지도 모르겠지만…. 그 대신 작가는 화초를 기르고 물고기를 길렀어. 그게 '만화를 위해서'한 전부야.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고 묻고 싶지? 애초부터 이 만화의 작가인 '코테가와 유아' 씨는 사형수를 통한 '사람'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화초를 기르고 물고기를 기른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지. '작은 생명'에 대해서 끊임없는 관심과 애정을 주어야 하는 일이거든. 그리고 하나의 '생명'인 사람도 마찬가지야. 그런데 우리는 항상 만나는 많은 이들이 '사람'이라는 것, 그리고 '생명'이라는 것을 잊어가며 살아가는지도 몰라. 그 '소중함'에 대해서 작가는 말하고 싶은 게 아닐까? 그렇기에 '사형수에 대한, 사람에 대한 만화'를 그리려고 각종 조사를 하기보다 '작은 생명'을 직접 길러보았던 것으로 생각해.
너는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니?
이렇듯 사람에 대한 마음으로 그렸던 만화에는 사람내음이 가득하지. 그래서 당연히 '사형수042호'인 '타지마 료헤이'에게 사람의 모습을 충분히 느낄 수 있어. 사형수임에도 '사람'으로 살아가기를 포기하지 않았던 타지마 료헤이는 수많은 사람 그리고 생명과 '감정'을 나누며 살아가지. 그중에서도 좋아하는 감정에 대한 자세는 인상 깊었어. 사형수이면서 다른 누군가를 좋아하게 된 '타지마 료헤이'는 단순히 '감정'을 포기하는 게 아니라 자신이 할 수 있는 만큼 감정을 느끼고 행동했지. 그리고 "좋았어"라고 말해. 누군가와 '감정'을 교감한다는 것, 설사 이루어지지 않더라고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에 대해 긍정하는 모습은 무척 감동적이었어.
이 글을 읽는 많은 이들 대부분이 '사형수'가 아닐 거야. 죽음이 예정되어 있고 사람과의 관계도 한계가 있는 '사형수042호'인 '타지마 료헤이'보다 훨씬 자유롭지. 나 또한 마찬가지야. 그런데 나는 읽으면서 나는 사형수인 '타지마 료헤이'보다 더 '사람'답게 살아가고 있을까? 라고 되묻게 되었어. 어쩌면 우리는 보다 '사람'답게 살아가면서 행복할 여유가 있음에도 그렇게 살지 못하는 건 아닐까? 『사형수042』는 나에게 '사람'으로 살아가는 삶에 대해서 잔잔히 물음을 건네고 있었어. 사형수이었던 한 사람의 삶을 보여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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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2/17 17:06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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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 It a Choice? - ![]() 에릭 마커스 지음, 컴투게더 옮김, 이형석 감수/박영률출판사 |
동성애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어?
너는 동성애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어? 동성애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은 게 아니라, 동성애라는 것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느냐고 물은 거야. '잘 알고 있다.'라고 답할 수 있어? 우리가 사는 한국사회처럼, 이 책의 저자가 사는 미국사회도 동성애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했어. 게다가 '동성애'에 대해 무관심한 혹은 혐오하는 사람뿐만 아니라, '게이'인 저자를 아는 친구들조차 "동성애는 선택이 아니었어?"라고 물으면서 동성애에 대한 '무지'를 드러냈지.
그래서 이 책의 저자, 에릭 마커스는 "세상에 어리석은 질문이란 것은 없습니다."라는 믿음 아래, 전문가를 비롯한 다른 사람들과 논의하고 각종 신문과 책을 참고해서 동성애에 관한 질문과 답을 쓰고는 책으로 냈지. 그게 바로, 『Is it a Choice?』야. 자그마치 300가지의 질문과 답이 가득한 이 책은 흔히 우리가 품는 동성애에 관한 질문들을 담아놓고 있지. 첫 질문 '동성애자란 무엇인가요?'부터 '게이 게임'이란 무엇인가요?'까지. 우리가 흔히 겪게 되는 데이트, 군대, 종교 등등 분야별로 질문과 답이 빽빽하지.
질문과 답 속에서 드러나는 '동성애자'로서 산다는 것.
단순히 질문과 답만 써놓은 듯하면서도, (그래서 편견으로 가득한 질문도 정성껏 저자는 답해주지. '어리석은 질문이란 없다.'라고 말하는 저자니까.) 읽다 보면 '동성애자'로서의 삶을 보여줘. 그런데 그 삶이 만만치 않아. '이성애 중심주의' 사회에서 사는 동성애자는 다른 사람들의 편견과 혐오뿐만 아니라, 법적인 문제까지 '차별'을 겪게 되지. '부부'로서 당당히 얻을 수 있는 혜택들을 '동성애 부부'라는 이유만으로 받지 못하는 거야.
또 나에게 있어 가슴이 아팠던 부분은 '나만의 비밀'이 있다는 것의 괴로움이었어. 동성애자임을 숨겨야 한다는 것은 단순히 '거짓말'하나를 하는 게 아니야. 자신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지 못한다는 것. 자신의 솔직한 면이 드러날까 '대화'의 하나하나, '태도'의 하나하나 거짓으로 숨겨야 하는 삶인 것이지.1 그러한 삶에서 '솔직하고 진실한 관계'를 맺기가 얼마나 어렵겠어?
잘 알지 못할 땐, 물어보는 거야.
이성애 중심의 사회에서 살아가는 우리. 그러하기에 동성애에 대해 잘 알지 못하고 오해와 편견 속에 갇혀 있을 수 있어. 그것은 네 탓이 아니야. 아직은 '동성애'에 침묵하는 혹은 혐오하는 사회의 문제이지. 그러나 동성애가 무엇인지 잘 알지 못할 땐, 물어보는 거야. 내가 처음에 동성애에 대해 '얼마나' 아느냐고 물었지? 잘 알지 못하기에 낯설게 느껴지고 오해할 수 있어. 그렇지만 '무지'라는 이름 아래 편견을 당당히 여기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고 생각해. 네 주위를 둘러싼 오해와 편견의 벽을 뚫고 싶다면, 솔직하게 물어볼 수 있는 자세가 필요하지 않을까?
- ‘나만이 아는 비밀’이 어떤 것인지 상상해 보기 바랍니다. 오늘은 월요일 아침이고 회사동료가 주말에 무엇을 했느냐고 묻습니다. 당신은 사실 몹시 아픈 애인을 돌보느라 주말을 병원에서 보냈음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그러하듯이 “뭐, 별로 특별히 한 건 없어”라고 답합니다.
당신은 아주 가까운 사람이 입원해 있어서 주말을 병원에서 보냈다고 얘기할 수도 있었으나, 또 다른 질문들이 뒤따를까봐, 그리고 결국에는 진실을 숨기는 것이 불가능해진다는 것을 알기에 사실대로 말할 수 없습니다. 당신은 자신의 비밀을 보호하기 위해, 친구이건 동료이건 친척이건 또는 택시 운전사이건, 아주 단순한 질문이나 이야기에 대해서도 절대 솔직한 답을 할 수 없고, 결국에는 무슨 말도 섣불리 할 수 없게 됩니다. - 본문 52 - 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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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2/15 13:00
[일상]
위의 책, '혁명을 팝니다'를 윤성호 감독이 추천한 글을 통해서 접하게 되었다. 남이 추천한 책을 잘 읽는 편은 아니지만, (XX추천 목록 같은 건 무시한다.-_-) 서점에서 무엇을 살까 하다가 생각이 나서 집어들었다. 결론부터 내리자면, '예상'을 벗어난 책이었다. 그냥 영화감독도 아닌, 독립영화감독의 추천한 책이라면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다시 말해 내가 선호하는 내용으로 가득한 책일 거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이 책은 나를 '뼈아프게'(상투적이야..)하는 책이었다.
왜? 여기서 날카롭게 비판하는 '반문화'라는 것은 내가 좋아하는 '사고방식'이기 때문이다. 규칙, 억압, 중앙집권적이고 관료적인 것을 반대하고 낡은 좌파적 행동에서 벗어나 보다 '급진적'으고 보다 '지역'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일종의 양식이 '반문화'라 할 수 있겠다. 그러한 '반문화'가 허구적이고 '환상'에 가깝다고 말하며 실제로 '반문화'는 '자본'에 더 가까운 형태라고 주장한다.
새로운 시대에 '반란자'들은 '부유한 지배자'가 되었다. 그것은 '반란자'의 '배반'이 아니라 '본모습'이다. 라고 하는 게 책이 말하고자 하는 것의 일부분이랄까. 이러한 책을 '독립영화감독' (내 편협한 생각으로는 '반문화'의 일부의 지위가 있는 '독립영화감독' 으로써) 윤성호 씨가 추천했다는 게 책을 읽어나갈 때는 '상큼한 충격'(-_-;)이었고 다 읽은 후에는 '역시!'라는 생각을 들게 하였다. (어째서? 라고 물으신다면, 언젠가는 꼭 쓰고 말 비평을 보시라.)
p.s 한번 더 읽어야 겠다고 마음먹게 하는 책이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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