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 해당되는 글 13건
2008/07/03 01:16
[느낌]
하지만 사랑은 일방적으로가 아니라
좀 더 자연스러운 것들이
하나 둘 모여 연결되어
이루어지는 거라 생각하거든요….
- 토순이 (낭만데지 데이지2 52화에서….)
*
나도 그래.
그래서 자연스러운 것들이
하나 둘 모여 연결되지 않으면
억지로 만들고 싶지 않아
그렇게 멈춘다면
그게 우리의 인연이지 않겠습니까….
좀 더 자연스러운 것들이
하나 둘 모여 연결되어
이루어지는 거라 생각하거든요….
- 토순이 (낭만데지 데이지2 52화에서….)
*
나도 그래.
그래서 자연스러운 것들이
하나 둘 모여 연결되지 않으면
억지로 만들고 싶지 않아
그렇게 멈춘다면
그게 우리의 인연이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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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6/19 01:09
[상념]
수많은 '이야기'
그 속에 담긴 사랑들
난, 부러웠다
어떻게 '사랑'하는지 알 수 있을까?
사랑하고 있다는 '믿음'
다른 이에게는 항상 찾아오는 그것은
나에게는 오지 않았다
'감정'이 메마른 것은 아니었다
다만,
쉽사리 들뜨고
어느새 수그러드는
그 '마음'을
난,
'믿을 수'가 없었을 뿐이다
그 속에 담긴 사랑들
난, 부러웠다
어떻게 '사랑'하는지 알 수 있을까?
사랑하고 있다는 '믿음'
다른 이에게는 항상 찾아오는 그것은
나에게는 오지 않았다
'감정'이 메마른 것은 아니었다
다만,
쉽사리 들뜨고
어느새 수그러드는
그 '마음'을
난,
'믿을 수'가 없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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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6/15 01:41
[상념]
에리히 프롬이 『사랑의 기술』에서 말했다.
사랑은 '대상'에 대한 '기다림'이 아니라고.
마찬가지로
관계도 '대상'에 대한 '선택'이 아니다.
바보같이,
왜 나는 모르고 있었던 것일까?
사랑은 '대상'에 대한 '기다림'이 아니라고.
마찬가지로
관계도 '대상'에 대한 '선택'이 아니다.
바보같이,
왜 나는 모르고 있었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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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6/08 22:35
[상념]
어느 날
지독한 '이곳'을 벗어나
둘만의 '저곳'으로 떠나는 행위가
사랑이라 불리기 시작했다
지독한 '이곳'을 벗어나
둘만의 '저곳'으로 떠나는 행위가
사랑이라 불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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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5/14 10:21
[느낌]
나는 당신을 사랑했습니다
- 푸쉬킨
나는 당신을 사랑했습니다. 사랑은 아직, 아마도 그럴겁니다,
나의 영혼 속에서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어요.
하지만 그것이 더이상 당신을 괴롭히지 못하게 하겠어요.
나는 무엇으로도 당신을 슬프게 하고 싶지 않습니다.
나는 당신을 사랑했습니다, 말없이, 희망도 없이,
때로는 두려움으로, 때로는 질투로 괴로와하며.
나는 당신을 사랑했습니다, 그토록 진실되게, 그토록 부드럽게,
다른 이들에 의해 사랑받도록 신이 당신에게 부여하신대로.
Я вас любил: любовь еще, быть может
В душе моей угасла не совсем;
Но пусть она вас больше не тревожит;
Я не хочу печалить вас ничем.
Я вас любил безмолвно, безнадежно,
То робостью, то ревностью томим;
Я вас любил так искренно, так нежно,
Как дай вам бог любимой быть другим
<1829년>
*
사랑이 '무엇'인지는,
지금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시에
내 몸은 반응할 수 있다.
머리는 모르지만,
가슴은 아는 것일까…?
- 푸쉬킨
나는 당신을 사랑했습니다. 사랑은 아직, 아마도 그럴겁니다,
나의 영혼 속에서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어요.
하지만 그것이 더이상 당신을 괴롭히지 못하게 하겠어요.
나는 무엇으로도 당신을 슬프게 하고 싶지 않습니다.
나는 당신을 사랑했습니다, 말없이, 희망도 없이,
때로는 두려움으로, 때로는 질투로 괴로와하며.
나는 당신을 사랑했습니다, 그토록 진실되게, 그토록 부드럽게,
다른 이들에 의해 사랑받도록 신이 당신에게 부여하신대로.
Я вас любил: любовь еще, быть может
В душе моей угасла не совсем;
Но пусть она вас больше не тревожит;
Я не хочу печалить вас ничем.
Я вас любил безмолвно, безнадежно,
То робостью, то ревностью томим;
Я вас любил так искренно, так нежно,
Как дай вам бог любимой быть другим
<1829년>
*
사랑이 '무엇'인지는,
지금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시에
내 몸은 반응할 수 있다.
머리는 모르지만,
가슴은 아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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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4/06 13:02
[느낌]
만일 사랑의 세 번째 요소인 ‘존경’이 없다면, 책임은 쉽게 지배와 소유로 타락할 것이다. 존경은 두려움이나 외경은 아니다. 존경은 이 말의 어원(respicere — 바라본다)에 따르면 어떤 사람을 있는 그대로 보고 그의 독특한 개성을 아는 능력이다. 존경은 다른 사람이 그 나름대로 성장하고 발달하기를 바라는 관심이다. 이와 같이 존경은 착취가 없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나는 사랑하는 사람이 나에게 이바지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위해서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성장하고 발달하기를 바란다. 만일 내가 다른 사람을 사랑한다면, 나는 그(또는 그녀)와 일체감을 느끼지만 ‘있는 그대로의 그’와 일체가 되는 것이지, 내가 이용할 대상으로서 나에게 필요한 그와 일체가 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독립을 성취할 때에만, 다시 말하면 목발 없이, 곧 남을 지배하고 착취하지 않아도 서서 걸을 수 있을 때에만 존경이 가능하다는 것은 분명하다. 존경은 오직 자유를 바탕으로 해서 성립될 수 있다. 프랑스의 옛 노래가 노래하듯 ‘사랑은 자유의 소산’이며 결코 지배의 소산은 아니다.
- 에리히 프롬, 사랑의 기술
*
세상에는
사랑을 하고 싶지 않은 마음을 주는 경험과
사랑을 무척 하고 싶은 마음을 주는 경험이 있다.
피엡 님의 블로그에서 또다시 만난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은
사랑하는 삶을 살고 싶게 하는 경험이다. ^~^
사랑하고 싶다.
혹은
이미 사랑하고 있을까? '_'?
나는 사랑하는 사람이 나에게 이바지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위해서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성장하고 발달하기를 바란다. 만일 내가 다른 사람을 사랑한다면, 나는 그(또는 그녀)와 일체감을 느끼지만 ‘있는 그대로의 그’와 일체가 되는 것이지, 내가 이용할 대상으로서 나에게 필요한 그와 일체가 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독립을 성취할 때에만, 다시 말하면 목발 없이, 곧 남을 지배하고 착취하지 않아도 서서 걸을 수 있을 때에만 존경이 가능하다는 것은 분명하다. 존경은 오직 자유를 바탕으로 해서 성립될 수 있다. 프랑스의 옛 노래가 노래하듯 ‘사랑은 자유의 소산’이며 결코 지배의 소산은 아니다.
- 에리히 프롬, 사랑의 기술
*
세상에는
사랑을 하고 싶지 않은 마음을 주는 경험과
사랑을 무척 하고 싶은 마음을 주는 경험이 있다.
피엡 님의 블로그에서 또다시 만난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은
사랑하는 삶을 살고 싶게 하는 경험이다. ^~^
사랑하고 싶다.
혹은
이미 사랑하고 있을까?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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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4/01 22:26
[느낌]
인생의 목적은
사랑받는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 되는 거란다.
너에게는 너만의 완성할 수 있는 삶의 목적이 있고
그것은 네 사랑으로 채워야 할 것이지
누군가의 사랑으로 채워질 수 있는 것이 아니야
누군가의 사랑을 얻기 위해
그 사람의 기대에 맞는 사람이 되려고 하지 마라.
있는 그대로 너의 모습을 받아주지 않는 사람이라면
네가 네 삶의 목적을 완성시킬 수 있도록 돕지 않는 사람이라면
그는 진정한 너의 사랑이 아니다.
류가미 / 라디오
* 종종, 이런 속삭임을 나에게 말하곤 해.
사랑받는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 되는 거란다.
너에게는 너만의 완성할 수 있는 삶의 목적이 있고
그것은 네 사랑으로 채워야 할 것이지
누군가의 사랑으로 채워질 수 있는 것이 아니야
누군가의 사랑을 얻기 위해
그 사람의 기대에 맞는 사람이 되려고 하지 마라.
있는 그대로 너의 모습을 받아주지 않는 사람이라면
네가 네 삶의 목적을 완성시킬 수 있도록 돕지 않는 사람이라면
그는 진정한 너의 사랑이 아니다.
류가미 / 라디오
* 종종, 이런 속삭임을 나에게 말하곤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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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3/16 11:21
[상념]
타인에 대한 사랑을 갈구하기 전에
자신에게 '나'에 대한 사랑을 갈구하는 게
더 낫지 않을까.
자신에게 '나'에 대한 사랑을 갈구하는 게
더 낫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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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2/16 23:57
[상념]
누군가에게 사랑받고 싶어요.
라는 내 마음속 외침을
들키고 싶지 않았다.
라는 내 마음속 외침을
들키고 싶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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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1/31 16:18
[끄적]
내 사랑 유리에
감독 : 고은기
주연: 고다미, 강희
제작 국가: 한국
등급 : 18세
상영시간 : 113분
장르 : 드라마
개봉일 : 1월 31일
처음부터 끝까지 '동아'의 판타지로 가득 찬 영화
영화 속에서는 주로 5명의 인물이 나온다. 순수한 소년 '동아' 그리고 동아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사는 동아의 가족과 맞은편에 사는 '몸을 파는 영자'와 그 영자의 포주이자 '아버지'인 산도적. 이상의 5명의 인물 관계 속에서 주로, '동아'의 시점으로 영화 속 이야기는 펼쳐진다. 그리고 처음부터 끝까지 들었던 생각은 "이것은 동아의 환상이 아닐까?"라는 것이었다. 더 직접적으로 말해서, '동아'가 원하는 '사랑의 판타지'를 보여준 것에 불과하다는 것, 결국, 이 영화에는 '사랑'보다는 '동아'의 욕망이 드러낸 이야기 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랑 이야기가 되고 싶은 '남성의 욕망' 이야기랄까. 그래도 나름 '사랑'을 말하고자, 그것도 '영원한 사랑'을 말하고자 하는 영화에 그렇게 심한 말을 할 수 있느냐고 물을 수도 있겠다. 그래서 하나하나 내 생각을 말해보려고 한다.
'유리에'는 오로지 동아의 '욕망' 속에서만 존재했다.
영화 제목에서 나오는 '유리에'라는 것은, 동아가 맞은 편에 사는 '영자'에게 붙여놓은 이름이다. 물론, 자기 마음대로. 영화 속에서 '동아'는 사람들이 '창녀 영자'와 섹스를 할 때마다 각자 자기가 좋아했던 이들, '영자'가 아닌 이들을 부른다고 말하는데, 그와 마찬가지로 '동아'도 영자가 아닌 자신만의 '환상' 속에서 '유리에'를 만들었던 것이다.
'오-! 그것은 돈을 주고 영자의 몸을 산 이들하고는 달리 '순수'하고 '고고'하며 '소년'일 때 하는 생각일 뿐이야!' 맞다. 확실히 '동아'는 돈을 주고 몸을 사고 싶어하지 않았다. 그러나 결국 '동아'의 '순결' 판타지를 (그렇다! 남성 판타지의 근원(?) 혹은 절정(!)이라 할 수 있는 깨끗한 '순결'에의 욕망 말이다.) '욕망'한 것일 뿐. 똑같은 '욕망' 속에 '유리에'라고 명명한 것은 같다고 할 수 있다.
실제로, 분명히 자신의 '이름'은 영자라고 말하는데도 단, 한 번도 '동아'는 '영자'에게 '영자'라고 부른 적이 없다. 자신의 욕망 속에서 명명한 '유리에'라고만 부를 뿐. 이름이 도대체 무엇이 중요하냐고 따져 물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동아'의 욕망 속에서 만들어진 '유리에'라는 이름을 부르고 '사랑' 그리고 '영원한 사랑'을 한다고 하는 모습과 감정 속에는 오로지 '동아'만 존재하고 있었다. '유리에'라고 불리는 '영자'의 마음, '영자'의 사랑 따위는 애초에 전~혀 느껴지지 않았던 것이다.
영원한 사랑? 영원한 욕망!
단순히 '동아'가 짝사랑을 했다고 해서, 사랑이 아니라고 말하는 게 아니다. (게다가 내용상 서로 '사랑'한다고 영화가 '주장'하고 있기는 하다.) '동아'가 좋아하는 대상, 그리고 '욕망'하는 대상은 '영자'가 아니라 자신의 환상 속에 있는 '유리에'라는 것. 그리고 자신이 무척이나 사랑하기에 당연히 유리에도 자신을 '사랑'할 것이라는 어디서 많이 본듯한 '남성 판타지'의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영화를 보는 내내 불편했다. 이것은 한 '여성'을 '욕망'하는 이의 환상적인 꿈속 이야기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영화 속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대화'를 하기보다는 자기 안에 있는 욕망을 '지껄였다'에 가까웠고 그러한 '소통불능'의 관계 속에서 '사랑'한다고 주장하는 두 남녀의 모습은 하나도 '사랑스럽지'않았다.
'남성 판타지'적인, 쉽게 말해 '마초'적인 욕망을 바로 드러내는 영화는 그러한 '모습'에 나처럼 불편함을 느끼지 않는 이라면 '사랑' 이야기라고도 생각할 수 있을지도……. '독립영화'라는 프레임 속에서도 '이러한 욕망'이 투영될 수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해준 작품이었다. 내용 혹은 주제에 대해 불편함을 많이 받아서 이러한 글을 썼지만, 영화의 '장면' 하나하나는 굉장히 몽환적이고 동화적인 '정적인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그래서 더욱 '동아'의 '꿈'처럼 느껴졌을지도……. 배경은 아름다웠으나, 내용은 불편했던 영화였다.
감독 : 고은기
주연: 고다미, 강희
제작 국가: 한국
등급 : 18세
상영시간 : 113분
장르 : 드라마
개봉일 : 1월 31일
처음부터 끝까지 '동아'의 판타지로 가득 찬 영화
영화 속에서는 주로 5명의 인물이 나온다. 순수한 소년 '동아' 그리고 동아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사는 동아의 가족과 맞은편에 사는 '몸을 파는 영자'와 그 영자의 포주이자 '아버지'인 산도적. 이상의 5명의 인물 관계 속에서 주로, '동아'의 시점으로 영화 속 이야기는 펼쳐진다. 그리고 처음부터 끝까지 들었던 생각은 "이것은 동아의 환상이 아닐까?"라는 것이었다. 더 직접적으로 말해서, '동아'가 원하는 '사랑의 판타지'를 보여준 것에 불과하다는 것, 결국, 이 영화에는 '사랑'보다는 '동아'의 욕망이 드러낸 이야기 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랑 이야기가 되고 싶은 '남성의 욕망' 이야기랄까. 그래도 나름 '사랑'을 말하고자, 그것도 '영원한 사랑'을 말하고자 하는 영화에 그렇게 심한 말을 할 수 있느냐고 물을 수도 있겠다. 그래서 하나하나 내 생각을 말해보려고 한다.
'유리에'는 오로지 동아의 '욕망' 속에서만 존재했다.
영화 제목에서 나오는 '유리에'라는 것은, 동아가 맞은 편에 사는 '영자'에게 붙여놓은 이름이다. 물론, 자기 마음대로. 영화 속에서 '동아'는 사람들이 '창녀 영자'와 섹스를 할 때마다 각자 자기가 좋아했던 이들, '영자'가 아닌 이들을 부른다고 말하는데, 그와 마찬가지로 '동아'도 영자가 아닌 자신만의 '환상' 속에서 '유리에'를 만들었던 것이다.
'오-! 그것은 돈을 주고 영자의 몸을 산 이들하고는 달리 '순수'하고 '고고'하며 '소년'일 때 하는 생각일 뿐이야!' 맞다. 확실히 '동아'는 돈을 주고 몸을 사고 싶어하지 않았다. 그러나 결국 '동아'의 '순결' 판타지를 (그렇다! 남성 판타지의 근원(?) 혹은 절정(!)이라 할 수 있는 깨끗한 '순결'에의 욕망 말이다.) '욕망'한 것일 뿐. 똑같은 '욕망' 속에 '유리에'라고 명명한 것은 같다고 할 수 있다.
실제로, 분명히 자신의 '이름'은 영자라고 말하는데도 단, 한 번도 '동아'는 '영자'에게 '영자'라고 부른 적이 없다. 자신의 욕망 속에서 명명한 '유리에'라고만 부를 뿐. 이름이 도대체 무엇이 중요하냐고 따져 물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동아'의 욕망 속에서 만들어진 '유리에'라는 이름을 부르고 '사랑' 그리고 '영원한 사랑'을 한다고 하는 모습과 감정 속에는 오로지 '동아'만 존재하고 있었다. '유리에'라고 불리는 '영자'의 마음, '영자'의 사랑 따위는 애초에 전~혀 느껴지지 않았던 것이다.
영원한 사랑? 영원한 욕망!
단순히 '동아'가 짝사랑을 했다고 해서, 사랑이 아니라고 말하는 게 아니다. (게다가 내용상 서로 '사랑'한다고 영화가 '주장'하고 있기는 하다.) '동아'가 좋아하는 대상, 그리고 '욕망'하는 대상은 '영자'가 아니라 자신의 환상 속에 있는 '유리에'라는 것. 그리고 자신이 무척이나 사랑하기에 당연히 유리에도 자신을 '사랑'할 것이라는 어디서 많이 본듯한 '남성 판타지'의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영화를 보는 내내 불편했다. 이것은 한 '여성'을 '욕망'하는 이의 환상적인 꿈속 이야기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영화 속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대화'를 하기보다는 자기 안에 있는 욕망을 '지껄였다'에 가까웠고 그러한 '소통불능'의 관계 속에서 '사랑'한다고 주장하는 두 남녀의 모습은 하나도 '사랑스럽지'않았다.
'남성 판타지'적인, 쉽게 말해 '마초'적인 욕망을 바로 드러내는 영화는 그러한 '모습'에 나처럼 불편함을 느끼지 않는 이라면 '사랑' 이야기라고도 생각할 수 있을지도……. '독립영화'라는 프레임 속에서도 '이러한 욕망'이 투영될 수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해준 작품이었다. 내용 혹은 주제에 대해 불편함을 많이 받아서 이러한 글을 썼지만, 영화의 '장면' 하나하나는 굉장히 몽환적이고 동화적인 '정적인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그래서 더욱 '동아'의 '꿈'처럼 느껴졌을지도……. 배경은 아름다웠으나, 내용은 불편했던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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