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뜩, 이 '명제'가 '사회화' 속에서 부정당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공교육'제도 속에서 내가 경험했던 것은 무엇일까?
교사라는 직위에 있는 나와 같은 '사람'에게 내가 느끼던 감정은 무엇이었던가?
왜 난 아직도 '퍽'하는 소리에 '움찔'해야만 하는 '반응'을 지니게 되었는가?
'퍽' 소리에 연상되는 장면이 왜 '교사'가 '성적'을 위한 '폭력'을 가하는 장면이 떠오르는가?
사람과 사람.
정말, 나는 '평등'하다고 굳게 믿는 것일까.
나와 같은 '사람'임에도
나는 왜
누군가에게는 '두려움'을 느끼고, 누군가에게는 '경멸'을 느끼는가.
나이, 학번, 성별, 돈, 외모, 지위 등등 수많은 요소들이 중요해지는 '구조'속에서
두려움과 경멸을 내면화한 나의 태도.
정말, 나는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아래 사람 없다.
라는 명제를 굳게 믿는 것일까?
언제부터였지.
사람 위에 사람을 두려워하고
사람 아래 사람을 경멸하기 시작한 것은…….
'사회화'속에서 나는 과연
'평등'의 원리를 내면화했는가, '차별'의 원리를 내면화했는가.
과연 '사회화'는 어느 쪽에 더 가까운가……?
"사물과 현상을 바라보는 안목을 갖추게 하지 않는 대신, 단순 암기와 문제풀이 능력만 묻고 그 결과에 따른 사회적 차별을 받아들이도록 하는 것이다. 지배자든 피지배자든 인간을 이해하는 눈이나 사회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눈을 뜨지 못한 채 지배하고 지배당한다. 사회적 책임이 없는 지배와 그에 대한 자발적 복종이 관철된다."
"우리는 학력 차별과 지적 인종주의를 어느 시대에나 있는 보편적 사회현상으로 바라본다. 그러나 누군가 지적했듯이, 주어진 사회공간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가능성의 장’은 지배계급이 우리에게 당연하다고 생각하게 만든 것보다도 훨씬 넓고 다양하다."
지적 인종주의란 단어는 '당당해진(오만한) 차별'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공기처럼, 너무나 일상화되어서 우리가 평소에 인식 못 하는 차별들은 얼마나 많을까.
얼마 전에 차별금지법의 공고가 있었다.
사실, 차별금지법 그 자체는 한국 사회에 엄연히 존재하는 수많은 차별을 역설적으로 드러낸다.
그리고 차별금지법은 기독교계와 재계의 강력한 반발로 7개의 항목이 사라졌다.
사라진 7개의 항목….
이 사건은 한국 사회에서 어떤 이들이 가장 '차별'받는지를 제대로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그 7개 항목은 ‘성적지향’을 비롯하여 ‘학력, 가족형태 및 가족상황, 병력, 출신국가, 언어, 범죄 및 보호처분의 전력’ 등이다.]
'차별' 중의 '차별'
'소외' 중의 '소외'
인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이 7개 항목이 차별받지 않게 될 때야말로
한국사회가 최소한의 인권의식을 지니게 되는 날이겠지.
적어도 그런 나라에서 살고 싶지 않은가?
만약, 최소한의 인권의식이 있는 한국에서 살아보고 싶다면
아래 리본들을 달아보자.
성소수자차별저지긴급행동에서 나왔는데,
리본들이 은근 귀엽다.ㅎ
(무지개색이 제일 좋아.ㅎ)
이 리본은 당신의 '상식'을 나타낼 것이다.
그리고 리본이 얼마나 많은 이들이 다느냐는 블로거들의 '상식'을 나타내겠지.
[한국은 '차별'하는 행위와 의식을 부끄러워하는 최소한의 상식이 필요한 나라다.]
[밝은 대낮에 대놓고 차별하는 모습이 당연하다고 여기는 '몰상식'은 사라져야 하지 않겠나.]



그 외 다른 리본 디자인과 리본을 다는 법
p.s 한국 사회에서 가장 차별받는 이들을 지지하지 않는다면,
언젠가 당신도 똑같이
'차별'받고 '소외'되는 날이 올 것이다.
농담 아냐.ㅎ
차별 그리고 소외의 문제는 그 누구도 비켜나갈 수 없는 법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