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12. 7. 00:56
[읽기]
저널(journal)의 한층 돋보였던 앤 창간호
성공회대에서 <여성주의 저널, n[앤]>의 창간호가 드디어 나왔다. 창간 준비호가 나올 때가, 5~6월쯤이었으니까 한 6개월 만에 나온 것이다. 처음, 그 모습을 보았을 땐, 놀랐다. 창간 준비호에 비해 '책' 같은 느낌이 들었다고나 할까? 두께나, 디자인, 표지 같은 면에서 '아마추어'에서 '프로'로 변한 느낌이 들었다. 그렇게 더욱 '매력적인' 앤을 들고 펼쳐보기 시작했다.
이번 창간호에서는 '군사주의'를 특집주제를 잡고, 편집위원회의 글들의 주제를 일치시켰다. 또한, 편집위원회 말고도 다른 이들과 함께 한 [좌담회]와 『대한민국은 군대다』의 저자 권인숙 선생님과의 인터뷰를 실었다. '군사주의'라는 주제 안에서 많은 이야기가 글 - 좌담회 - 인터뷰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서 좋았다. 창간준비호의 '수다' 분위기에서 '저널'로의 변화가 한층 느껴지는 창간호다.+_+
앤(n), 창간호를 읽고 맴도는 3가지 생각.
앤을 읽고 그 속에서 말해졌던 많은 생각 중, 3가지가 내 머릿속을 맴돌았다.
첫 번째는 '삶의 안보'에 관한 문제다. 오로지 국가 혹은 민족의 관점에서만 안보를 논하는 것은 각 공동체의 혹은 각 개인의 차이를 전혀 반영하지 않은 것이고, 결국은 안보의 경험을 표준화하고 획일화한다는 것이다. 수없이 많은 안보의 경험과 인식 속에서 우리가 자연스레 여겨왔던 '국가의 안보'는 실은 '주입' 받은 것에 불과한 걸지도 모른다.
두 번째는 여성, 특히 군대에 애인이 있는 여성은 '군대 간 남성'에게 감정의 노동을 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군대 간 애인에게 미안한 감정, 빚진 마음을 가지고 길고 긴 이야기를 계속 들어준다던가, 위문편지를 계속 보내주고, 헤어짐에 대해서도 깊이 고민해봐야 하는 현실이 특이했다. 전쟁과 마찬가지로 '징병제'라는 것도 결국은 '징병' 당하는 이뿐만 아니라 그 주위 사람들에게도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상기시켜 주었다.
세 번째는 『대한민국은 군대다』의 저자, 권인숙 선생님의 인터뷰 중에서 나온 부분이다. 군대라는 곳이 서열을 맺는 것에 대해, 약자와의 관계를 맺는 것에 훈련받는다는 점이다. 철저하게 서열을 공고히 맺게 하고 약자와의 관계를 매우 '군사'적 (혹은 '마초적'?)으로 맺게 한다는 점에서 날, 섬뜩하게 했다.
다양하고 유기적인 여성주의 이야기가 되었으면….
여성주의는 그 특성상 다양한 이야기를 할 수가 있다. 이미, 여성주의 자체는 한정된 생각과 인식의 틀을 벗어난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앤에서 그 특성을 잘 살려 삶에 대한 '다양한' 모습들을 썼으면 좋겠다. 동시에, 한 권의 책에서 쓰인 모든 글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야 한다. 단순히 '여성주의'의 다양한 이야기만 풀어놓아서는 저널의 한계가 있을 테니까 말이다. 그 유기성이 '여성주의란 이런 것이구나!'라는 생각과 '그렇다면, 이건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라는 질문을 만들어 낸다면 앤은 정말 '매력적인' 저널이 될 것이다. :D
이번 창간호에서는 '군사주의'를 특집주제를 잡고, 편집위원회의 글들의 주제를 일치시켰다. 또한, 편집위원회 말고도 다른 이들과 함께 한 [좌담회]와 『대한민국은 군대다』의 저자 권인숙 선생님과의 인터뷰를 실었다. '군사주의'라는 주제 안에서 많은 이야기가 글 - 좌담회 - 인터뷰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서 좋았다. 창간준비호의 '수다' 분위기에서 '저널'로의 변화가 한층 느껴지는 창간호다.+_+
앤(n), 창간호를 읽고 맴도는 3가지 생각.
앤을 읽고 그 속에서 말해졌던 많은 생각 중, 3가지가 내 머릿속을 맴돌았다.
첫 번째는 '삶의 안보'에 관한 문제다. 오로지 국가 혹은 민족의 관점에서만 안보를 논하는 것은 각 공동체의 혹은 각 개인의 차이를 전혀 반영하지 않은 것이고, 결국은 안보의 경험을 표준화하고 획일화한다는 것이다. 수없이 많은 안보의 경험과 인식 속에서 우리가 자연스레 여겨왔던 '국가의 안보'는 실은 '주입' 받은 것에 불과한 걸지도 모른다.
두 번째는 여성, 특히 군대에 애인이 있는 여성은 '군대 간 남성'에게 감정의 노동을 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군대 간 애인에게 미안한 감정, 빚진 마음을 가지고 길고 긴 이야기를 계속 들어준다던가, 위문편지를 계속 보내주고, 헤어짐에 대해서도 깊이 고민해봐야 하는 현실이 특이했다. 전쟁과 마찬가지로 '징병제'라는 것도 결국은 '징병' 당하는 이뿐만 아니라 그 주위 사람들에게도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상기시켜 주었다.
세 번째는 『대한민국은 군대다』의 저자, 권인숙 선생님의 인터뷰 중에서 나온 부분이다. 군대라는 곳이 서열을 맺는 것에 대해, 약자와의 관계를 맺는 것에 훈련받는다는 점이다. 철저하게 서열을 공고히 맺게 하고 약자와의 관계를 매우 '군사'적 (혹은 '마초적'?)으로 맺게 한다는 점에서 날, 섬뜩하게 했다.
다양하고 유기적인 여성주의 이야기가 되었으면….
여성주의는 그 특성상 다양한 이야기를 할 수가 있다. 이미, 여성주의 자체는 한정된 생각과 인식의 틀을 벗어난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앤에서 그 특성을 잘 살려 삶에 대한 '다양한' 모습들을 썼으면 좋겠다. 동시에, 한 권의 책에서 쓰인 모든 글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야 한다. 단순히 '여성주의'의 다양한 이야기만 풀어놓아서는 저널의 한계가 있을 테니까 말이다. 그 유기성이 '여성주의란 이런 것이구나!'라는 생각과 '그렇다면, 이건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라는 질문을 만들어 낸다면 앤은 정말 '매력적인' 저널이 될 것이다. :D
책갈피
1.
"안보 개념을 다시 정립할 필요가 있다. 안보는 안보를 생각하는 사람이 어느 지역에 살고 있느냐에 따라 정의되어야 한다. 예를 들면, 시골 지역 여성들에게 안보문제는 환경에 대한 안보 즉, 자신과 가족들의 일상을 위해 필요한 것이다. 환경이 오염되고 일상이 파괴될 때, 이 여성들에게는 이것이 안보위협을 뜻할 것이다.또 가난한 지역에 사는 사람에게 안보는 자연재해에 대한 공포를 뜻하기도 한다. 자연재해로부터 피해가 그들의 안보를 위협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안보는 일상 속에서 폭력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 안전한 생활을 뜻할 수도 있다. 여성들이 성폭력의 위험 없이, 폭력의 두려움 없이 사는 것이다. 또, 성폭력 피해자가 다시 피해를 받는 위협에 시달리지 않는 것이기도 하다." _ 엘렌 엘스터
-윤정은, 「페미니즘이 말하는 안보」,『여성주의 저널, 일다』, 2005년 6월 28일
2.
"내게도 이 역할은 너무나 당연해서 내가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인지, 이 역할을 하고 싶은지 아닌지, 이 불편함은 무엇인지 의문을 갖기는 커녕 인식하지도 못했다. 군대에 간 친구에게서 전화가 오면 수신자 부담이든, 다른 사람과 함께 있든, 중요하게 해야 할 일이 있든, 밥을 먹고 있든 최대한 받아줘야 한다고 생각했고, 별로 할 말이 없어도 끝까지 성실하게 매번 힘들다는 애기 들어주면서, 안됐다고, 몸 건강하라고 있는 걱정 없는 걱정 다 해주는 게 자연스러웠다. 그런 억지스러움이 나는 자연스러웠다. 의무를 지지 못한 사람들은 아마도 군대에 간 친구가 휴가를 나와서, 혹은 군대에 다녀온 남성이 군대 이야기를 꺼냈을 때, 말도 안되는 애기에는 억지로 웃느라고, 힘드었다는 애기에는 동정어린 표정을 지으려고 애썼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화제를 돌리자고 말도 못할 만큼 군대 얘기만 나오면 나를 수동적이게 만들었던 것은 괜히 내가 빚을 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내가 해야 할 일을 그가 대신 더 많이 하게 된 것 같아 괜히 미안했다. 또한 그것은 일종의 금기였다. 그의 경험은 곧 국가적 경험과 일치하고, 그런 그에게 위안을 주는 것이 국민 된 자로서 내가 해야 할 일이고, 그의 경험과 그가 경험을 계속 이야기 하는 것에 대해 문제의식을 나타내거나 반감을 드러내는 것은 마치 국가에 대항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 날래,「의무를 지지 못한 자의 의무」,『앤(n)』, 창간호(2007.11), 36~37p
3.
"또한 중요한 점은 군대라는 곳이 서열을 어떻게 맺는가가 중요한지를 알려주고, 약자와의 관계를 알려주는 곳이죠. 사회의 '약자층'으로 구성되는 여자들에게 있어서는 남자들이 자신들을 어떻게 다룰지를 2, 3년 동안 훈련받는 지를 모르고 축구 이야기만을 듣고 있다는 것만이 위험한 일이죠."
- 권인숙, 꿈의 택배, 우공,「[인터뷰]『대학민국은 군대다』의 저자 권인숙 선생님을 만나다!」,『앤(n)』,창간호(2007.11), 101p.
2007. 12. 6. 22:24
[읽기]
![]() |
피터팬 죽이기 - ![]() 김주희 지음/민음사 |
열쇳말 : 꿈, 현실, 20대
한 문장 : 꿈과 현실 사이에서, 20대의 모습
첫 번째 애인과 두 번째 애인 그리고 나
소설에서 기억나는 인물은 주인공 '나'와 그의 첫 번째 애인 그리고 두 번째 애인이다. '나'의 1인칭 시점에서 이야기를 서술하며, 그 서술에 2명의 애인은 끊임없는 변주를 일으킨다. 첫 번째 애인은 '꿈' 혹은 '다른 세계'를 보게 한다. 그는 밴드를 하고, '게이'이며, 현실에서 적응하기를 거부한다. 두 번째 애인은 '현실' 혹은 '지독한 평범함을 보여준다. 그녀는 직장을 가지고 있고, '호모포비아'이며, 현실에 적응한다. 그 두 명의 애인의 미묘한 사이에 '나'는 놓여있고 자신의 길을 '외로이' 간다.
사실, 그 2명의 애인을 꿈과 현실 같은 것으로 나누는 자체가 우스운 것일지도 모른다. 그 2명의 애인과 '나'는 결국, 모두 존재하는 '현실의 일면'에 불과한 걸지도 모른다. 혹은 2번째 애인처럼, 사회에 완전히 동화되어 피터팬을 죽여버린 모습을 현실이라고 믿는 게, 더 '비현실'적인, '비본질'적인 것일 수도….
나는 현실에서 벗어나지도, 현실에 적응하지도 않는다. 그저 살아가고 있을 뿐. 그 모습이 나의 감정의 내밀한 곳에 자극을 일으켰다. '나'는 외로움에 지독히 아파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2007. 11. 1. 12:05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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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인희의 북유럽 신화 1 - ![]() 안인희 지음/웅진지식하우스(웅진닷컴) |
![]() |
안인희의 북유럽 신화 2 - ![]() 안인희 지음/웅진지식하우스(웅진닷컴) |
한 문장 : 북유럽 신화를 처음 읽는 이에게 좋은 책.
덧 : 그렇지만, 맛깔 나게 신화를 이야기하지는 않는다.
'멸망하는 신들'의 이야기. 북유럽 신화는 그 점이 특이했다. 보통, 신이라면 절대적이고 영원히 '존재'하는 것이라 인식하기 마련인데 북유럽 신화는 딱 잘라 말한다. '처음'이 있으면 '끝'이 있는 법이라고. 바로 이 점에서 흔히 아는 '그리스 로마 신화'와는 색다른 느낌을 들게 한다. 게다가 신들은 자신들이 '멸망'할 것임을 알고 있다.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다는 절대적 명제 아래, 그 진실을 품고 사는 신들의 이야기. 묘하게 매력적이다.
멸망하는 신들의 이야기여서일까? 이제는 '멸망한 신'을 믿지 않은 이들이 쓴 신화이기 때문일까?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제우스의 위치에 있는 '오딘'은 애꾸눈이다. 또 비너스의 위치에 버금가는 프리아는 끝끝내 자신의 '짝'을 찾지 못하고 방황한다. 이렇듯, 신들은 하나같이 '모자람'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 모자란 신들은 자신들의 멸망을 알며, 그것을 막으려고 최선을 다한다. (미리 최후의 전쟁, 라그나뢰크를 맞기 위한 준비를 하는 것이다.) 그러나 결국 끝이 반드시 존재하듯 멸망하고 다시 새로운 시작이 이어진다
최근(?), 북유럽 신화에 대한 관심증가에 대한 기류 속에 나도 이 책을 읽게 되었는데, 읽으면서 놀라운 점이 있었다. 이미 북유럽 신화는 우리에게 '영화', '만화', '게임', '이야기' 속에 담겨 있었던 것이다. 덕분에 처음 읽는 외국 신화가 친근하기까지 했다. 신화는 우리 삶의 곳곳에 '지금' 존재하고 있다는 말을 누군가가 했었는데, 그 말이 떠오르더라. '신화'의 내밀한 부분은 지금 살아가는 현재와 밀접하고 비밀스런 관계를 맺는 게 아닐까?
북유럽 신화에 나오는 수많은 신 중 '로키'에 눈길이 갔다. 장난스러우면서 많은 문제를 일으키고 동시에 신들의 여러 문제를 해결하는 '불의 신, 로키'. 신과 거인 사이의 미묘한 위치는 신들과 거인들을 멀리서 지켜볼 수 있는 '혜안'을 지니게 했다. 그리고 어쩌면 '라그나뢰크'를 부르는 중요한 '원인'이다. 왜 이 '신'에게 매력을 느끼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북유럽 신화에서 '라그나뢰크'와 '로키'는 나에게 '흥미'와 '생각거리'를 던져주는 아이템이다.